권헌정 청주강내도서관 사서

권헌정 사서
권헌정 사서

 

몸이 꽁꽁 얼어붙는 추운 겨울, 마음이나마 뜨겁게 덥혀줄 소설을 한 권 소개하고자 한다. 작가 허태연은 등단작인 ‘플라멩코 추는 남자’ 로 2021년 제11회 혼불문학상을 수상하면서 화제를 모았고, ‘하쿠다 사진관’은 모두가 기다려 온 신작이다. 작가는 전작에서 코로나 시절에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화두로 따뜻한 위로를 전했는데, ‘하쿠다 사진관’도 사진관에서 벌어지는 인간미 넘치는 인생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통해 또다시 마음의 치유를 전하고 있다.

나는 처음 ‘하쿠다 사진관’라는 제목만 보고 당연히 일본 소설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읽어보니 ‘하쿠다’라는 말은 ‘하겠다’라는 뜻을 가진 제주 방언이다. 과연 사진관에서 뭘 하겠다는 것일까?

사회생활에 지친 ‘제비’는 제주도 한 달 살이를 계획하고 여름의 제주를 즐기기 위해 무작정 떠난다. 여행의 마지막 날 누구나 그렇듯 ‘제비’ 또한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암담한 현실로 다시 돌아가기가 싫다. 그러던 중 우연한 계기로 ‘하쿠다 사진관’에 취직하고 제주 토박이가 많이 사는 해녀마을인 ‘대왕물꾸럭마을’ 한 민박집에서 생활하게 된다. 이 소설은 하쿠다 사진관에 손님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의 다양한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에서도 ‘와일드 라이더스’란 에피소드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라이더들은 50대의 여고 동창생들이다. 이들은 전국 각지에 뿔뿔이 흩어져 생활하다가 1년에 한 번씩 모여서 라이딩을 즐긴다. 여름, 제주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오토바이로 달리는 기분은 어떨까? 겨울인 지금은 상상만 해도 얼굴 전체가 얼어붙을 것 같다만. 라이딩 중 잠깐 목을 축이러 들른 사진관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달리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기로 한다. 한 명 한 명이 다 사진에 나오면서 좀더 생동감 있게 찍기 위해서, 사진사 ‘석영’은 일행 중 한 명의 뒤에 타기로 한다. 일행 중 ‘석영’을 뒤에 태워야 하는 그 한 명은 사진에 나올 수 없는 위치인데 ‘정미’가 선뜻 본인이 하겠다고 나선다. ‘정미’는 각양각색의 오토바이 사이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노란색 배달 오토바이의 주인이다. 돌아가며 한 번씩 사진의 주인공이 된 친구들도, 묵묵히 서포트한 ‘정미’도 모두 만족하는 사진을 찍은 후 그들은 포토 상영회에 참석한다. 힘든 시기를 지나온 ‘정미’의 사연이 나오고 ‘정미’가 버틸 수 있었던 이유가 나온다. ‘정미’와 친구들의 관계에 가슴이 한 번 더 따뜻해진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본인이 행운아라고 생각하는 ‘정미’의 긍정적인 마음이 인상적이었다.

제주말로 ‘괸당’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이라고 한다. 서로 괸당이 되어주는 ‘정미’와 친구들 이야기도 따뜻하고 외지인인 ‘제비’가 토박이 마을사람들과 융화되어 ‘석영’, ‘양희’, 할망들과 괸당이 되어 가는 과정도 감동적이다. 어쩌면 ‘하쿠다 사진관’에서 하쿠다는 ‘괸당이 되겠다, 새롭게 시작하겠다’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싶다. 추운 겨울 옆에 있는 괸당들을 돌아보고 ‘고맙다, 사랑한다’ 한 마디씩 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분들에게, 추운 겨울 마음을 따뜻하게 덥히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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