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연말연시를 맞아 지자체마다 인사가 한창인 가운데 ‘놀고먹는’ 제도라는 지적을 받는 ‘공로연수제’에 또다시 곱지 않은 시선이 꽂히고 있다. 특히 지난 지방선거철에 공로연수제 개선에 큰 소리쳤던 인사들마저 공무원노조의 반발에 부딪히자 슬그머니 없었던 일로 해 눈총을 받고 있다.

공로연수는 정년퇴직을 앞둔 공무원(20년 이상 근속)이 사회적응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1993년 도입됐다. 퇴직 전 6개월에서 1년 동안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고 공무원 신분은 유지되며, 이 기간 현업수당을 제외한 보수를 받는다. 최대 1년간 쉬면서도 월급은 챙길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공무원 공로연수는 특혜라는 지적이 오래 전부터 나왔다. 무엇보다 출근조차 하지 않는 공무원에게 매년 수천억원의 국민혈세가 낭비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 대세인 시대상황과 맞지 않고, 국민정서와도 동떨어져 개선 요구는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공로연수제는 요지부동이다. 정부도 필요성을 인정하고, 각 지자체도 개선에 나서보지만 근본적인 틀은 손대지 못하고 있다. 공직사회의 인사적체 해소 수단으로 공로연수제만한 게 없다고 여겨서다.

공로연수는 인사상 파견근무에 해당된다. 누군가 공로연수를 떠나면 그 자리는 결원이 된다. 따라서 상위 보직의 경우 하위 직원을 승진시켜 보충하게 되고, 이는 다른 직원들의 연쇄 승진으로 이어진다.

공무원들도 공직 경험이 풍부한 고급인력을 조기에 퇴출시키는 공로연수제를 모두 반기는 것은 아니다. 일찍 나가야 딱히 할 일도 없고, 놀면서 임금을 받는 것도 부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배들의 앞길을 막는다는 비난이 무서워 대부분 공로연수를 거부하지 못하고 있다. 공직생활에서 승진은 가장 큰 기쁨인데 차마 후배들의 원성을 감당하며 계속 근무하기란 쉽지 않다.

실제 경북의 한 지자체에서는 4급 직원이 공로연수에 들어가려 하지 않자 공무원노조가 피켓 시위를 하는 등 반발했다. 충북과 전남 등의 기초 지차체에서도 간부 공무원 일부가 공로연수를 거부할 움직임을 보여 공직사회가 한때 술렁이기도 했다.

권기창 안동시장은 민선8기 취임 초 공로연수 축소·폐지 계획을 밝혔지만 공무원노조의 반발로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결국 현행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이밖에 충남과 충북, 전북, 전남, 광주 등에서도 몇 년 전부터 공로연수제 개선을 시도했지만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는 자료는 나오지 않고 있다.

민간기업과 공직의 경계가 모호한 정보화 시대에 사회적응을 핑계로 많은 급여를 줘가면서까지 고급인력을 놀리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공로연수 기간을 점차 줄이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 여기에 공로연수 중 공직생활의 경험을 살려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을 부여하고 사회공헌 활동을 의무화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정부와 지자체, 공무원노조는 협의를 멈추지 말고 합리적인 개선책을 서둘러 찾아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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