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꿈세상 정철어학원 대표’

소설 ‘대지'의 작가 펄 벅이 1960년 우리나라를 처음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황혼에 경주 시골길을 지나고 있는데, 한 농부가 소달구지를 끌고 가고 있었습니다. 달구지에는 가벼운 짚단이 조금 실려 있었지만, 농부는 자기 지게에 따로 짚단을 지고 있었습니다. 합리적인 서양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상하게 볼 광경이었습니다. 힘들게 지게에 짐을 따로 지고 갈 게 아니라 달구지에 짐을 싣고 농부도 타고 가면 편했을 것입니다.

통역을 통해 펄 벅이 물었습니다.

"왜 소달구지에 짐을 싣지 않고 힘들게 갑니까?"

그러자 농부가 대답했습니다.

"에이,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저도 일했지만, 소도 온종일 힘든 일을 했으니 짐을 서로 나누어져야지요."

펄 벅은 감탄하며 말했습니다.

“나는 저 장면 하나로 한국에서 보고 싶은 걸 다 보았습니다. 농부가 소의 짐 을 거들어주는 모습만으로도 한국의 위대함을 충분히 느꼈습니다”

농사를 거드는 짐승에게도 정을 나누어 주었던 농부처럼 우리는 배려를 잘하는 민족이었다. 펄 벅이 만난 시골 농부의 이야기는 요즈음의 우리에게 강한 울림을 준다.

얼마 전, 교양 프로그램 ‘한문철의 블랙박스 리뷰’에서 본 사례이다. 옆 차선을 주행하던 차가 갑자기 차선을 변경하려 하여 사고가 날 뻔했다. 블박 차는 간신히 사고를 피한 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가고 있다. 그러나 이게 웬일, 끼어들기 하려던 차가 한참을 쫓아와서 도로 가운데 블박 차 앞에 차를 세우더니 내려서 오히려 난동이다. 심지어 낫을 들고 와 차를 부술 듯 찍어댄다. 말문이 막힌다. 하지만 방송이려니, 남 일이려니 했다.

오늘 엘리베이터에서 일이다. 3층 도착, 서둘러 내리는데 문 쪽 젊은이가 점퍼 주머니에 손을 넣느라 그의 팔꿈치가 튀어나왔다. 피할 새도 없이 툭 부딪혔다. 내리는 순간 뒤에서 욕지거리가 들린다.

돌아보니 닫히는 문 사이로 아들 나이쯤 보이는 젊은이가 더러운 듯 팔꿈치를 털어내며 눈을 부라린다. 사실은 팔꿈치가 튀어나오며 나를 툭 친 상황인데 내가 죄인이 되었다. 넋 놓고 서 있다가 어이없이 돌아섰다. 남 일이 아니다. 종일 즐겁지 않다.

세상이 그들의 화를 치밀게 해서인가? 따지지도 묻지도 않고 자기를 거스르는 사람을 용납할 수 없어서인가? 소를 배려하여 지게를 지고 소달구지 곁을 걷던 농부의 모습이 그립다. 아니 그런 배려는커녕 적반하장(賊反荷杖)만 아니어도 좋겠다.

어른이고 아이고 점점 나만 생각하고 내가 아닌 상대는 아랑곳없이 자신의 득실, 자신의 감정만 앞세우는 세태를 접하곤 한다.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옳고 그름의 경계도 초월하는 듯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름다운 배려로 행복을 나누는 사람들이 곳곳에 많이 있다는 것이다. 어느 구멍가게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느 날, 남편 없이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여인이 꼭 움켜쥔 돈 1만원을 들고서 구멍가게로 분유를 사러 왔다. 분유 한 통을 계산대로 가져가니 주인은 1만6천원이라고 한다. 실망하여 힘없이 돌아서는 아이 엄마 뒤에서 가게 주인은 분유통을 슬며시 떨어뜨렸다. 그리고 아이 엄마를 불러 ‘찌그러진 분유는 반값’이라고 말하며 분유통과 함께 거스름돈 2천원을 건네주었다.

아이 엄마를 배려하는 가게 주인의 마음에서 한국의 위대함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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