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우리 겨레의 신화 속에 등장하는 활쏘기는 고구려 동명성왕, 즉 주몽 신화입니다. 북부여의 군대에게 쫓기던 주몽이 엄사수에 가로막혀 죽을 상황에 이르자 뜬금없이 활로 강물을 치며 하늘을 탓합니다.

그러자 물고기와 자라들이 몰려들어 다리를 놔주었고, 강을 건너자 물고기와 자라는 흩어져서 뒤쫓던 북부여 병사들이 허탕 치고 말았습니다. 자라나 물고기가 실제의 어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일 뿐입니다. 그들은 고기잡이들이었을 겁니다.

그러면 왜 활쏘기가 신의 권능을 받는 상징물이 되었을까요? 활쏘기가 나타나기 때까지는 모든 싸움이 맞붙어 싸우는 육박전의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굳이 몸을 부닥치지 않아도 되는 무기가 나타난 것입니다. 활은 인간의 숙명 같은 ‘공간’이라는 제약을 극복하는 방법을 알려준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장비를 잘 쓸 수 있는 사람은 특별한 능력을 지닌 것이라고 보고 그에 대한 존경심이 뒤따랐던 것이죠.

단군신화에는 활쏘기 이야기가 없습니다. 단군신화는 활쏘기를 무기로 하여 정복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만들어진 신화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즉 주몽 신화보다 훨씬 더 오래 묵은 신화라는 얘기죠. 이런 낡은 신화로부터 현실의 정복 능력을 확실히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를 새로운 신화로 끌어들이면서 고대국가는 시작된 셈입니다. 그러자면 그런 국가를 만든 인물에게 현실 속의 사람들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적절하고 절실한 것이 바로 활쏘기입니다.

주몽은 태어나서 걷자마자 활을 쏩니다. 나무를 구부려서 파리를 잡았다는 것인데, 아주 그럴 듯한 이야기죠. 게다가 다 자라자 활쏘기로 특별한 능력을 보입니다. 매년 되풀이되는 축제에서 배다른 형제들보다 더 많은 짐승을 잡아서 질투의 대상이 됩니다.

결국 이런 것이 그를 위기로 몰아넣죠. 어머니의 권유로 남쪽으로 도망을 한 주몽은 또 활쏘기로 송양과 겨룹니다. 거기에서 이김으로써 나라의 기틀을 잡고 아내 소서노의 도움으로 왕이 됩니다.

신화의 주인공 둘레에는 꼭 용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컨대 부석사를 의상대사가 세우려고 하는데, 그 터에 아홉 마리 용이 웅크리고서 반발을 합니다.

그 중에 하나가 의상을 돕죠. 이 용이 도대체 무엇일까요? 신화 속에서 이 용들은 토착 세력을 말합니다. 불교는 외래종교죠. 반드시 토착 종교와 마찰을 빚습니다. 두 종교의 대결에서 어느 한쪽이 이길 수밖에 없는데, 이때 이기는 쪽에 도움을 주는 세력이 나타납니다. 토착 세력 중에서 일부가 의상을 도왔다는 얘기입니다.

이것이 용 이미지로 나타나곤 합니다. 이 용을 화살로 잡는 설화도 많습니다. 용을 잡는 것이 바로 활입니다. 활이 어떤 상황에서 권위를 갖게 되었나 하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주몽 신화에도 용이 나옵니다. 주몽이 죽을 때가 되자 용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모셔가죠.

사실 이 용은 장례 행렬을 묘사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만, 위대한 영웅이 보통 사람처럼 죽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신화 체계 속의 독특한 표현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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