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기원전 490년 춘추시대 말기, 오나라 합려는 죽기 전에 월나라 구천에 대한 복수를 유언으로 남겼다. 태자인 부차(夫差)가 왕위를 잇자 가장 먼저 부친의 원수를 갚고자 했다. 그 결심을 잊지 않기 위해 날마다 딱딱하고 차가운 땔나무 위에 누워 자면서 복수의 의지를 다졌다.

“월나라 구천아 기다려라. 내 너를 잡아 죽일 것이다!”

구천이 이 소식을 듣자 이렇게 말했다.

“가소롭구나! 이번에는 부차를 사로잡아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말겠다.”

구천은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전쟁을 강행했다. 부차가 이 소식을 듣고 전군 동원령을 내렸다. 불행히도 구천은 패하여 회계산으로 달아났다. 하지만 오나라 군대가 회계산을 포위하였다. 구천은 어쩔 수 없이 화친을 청했다. 부차가 이를 받아들이려 하자 신하 오자서(伍子胥)가 간언하였다.

“구천과 그 신하들을 모두 죽여야 합니다. 그리하면 월나라를 얻을 수 있습니다. 화친은 하늘이 월나라를 대왕께 주고자 하는데 이를 받지 않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절대로 허락해서는 아니 됩니다. 저들에게 속히 죽음을 내리십시오!”

하지만 부차가 끝내 화친을 결정하였다. 그리고 월나라 구천을 데려와 하인으로 삼았다. 구천은 천한 일도 마다하지 않고 이를 악물고 견뎠다. 그렇게 해서 부차의 신임을 얻어 3년 만에 월나라로 돌아왔다. 이때부터 부차에 대한 복수를 다졌다.

한편 부차는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멀리 제나라 정벌에 나섰다. 그러자 신하 오자서가 간언했다.

“월나라는 뱃속에 질병과 같은 존재입니다. 대왕께서는 아픈 부위는 손쓰지 않으시고 아무런 상관없는 제나라를 치려 하시니 나중에 후환을 어찌하려 하십니까?”

하지만 부차가 이를 듣지 않고 제나라 정벌에 나섰다. 이는 군대를 피로하게 하고 나라의 물자를 소비하는 아주 어리석은 일이었다.

구천은 귀국한 후에 밥상머리에 곰의 쓸개를 걸어두었다. 그리고 하루 세 번 밥을 먹기 전에 쓸개를 핥아 그 쓴맛을 느낄 때마다 자신을 채찍질했다.

“구천아! 오나라에서의 굴욕을 잊었느냐!”

이후 구천은 인재를 등용하여 가장 먼저 월나라 국력을 성장시켰다. 그 바탕 위에 군대를 키웠다. 이어 오나라 신하들을 금품으로 매수하였고, 오나라 부차에게는 끊임없이 미녀를 보내 미혹시켰다. 10년이 되던 해 드디어 구천이 전군에 출정을 명하였다. 이번에는 월나라가 강해 오나라는 상대가 되지 못했다. 부차는 어쩔 수 없이 남은 병력을 이끌고 고소산(姑蘇山)으로 도망하였다. 월나라 군대가 그 뒤를 쫓아 고소산을 철저히 포위하였다. 부차가 급히 화친을 청하였으나 구천이 거절하였다. 부차는 결국 칼로 자신의 목을 찔러 자결하였다. 부차가 죽자 월나라 군대가 오나라를 멸하고 점령하였다. 이는 ‘오월춘추(吳越春秋)’에 있는 고사이다.

삭주굴근(削株堀根)이란 줄기를 자르고 뿌리를 캐낸다는 뜻이다. 장차 화근이 될 일을 미리 제거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병은 나쁜 습관이 오래되면 생기고 불행은 거만하여 위세를 떨 때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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