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희 충북도 총무과장

 

[충청매일] 배우 故 최진실은 대한민국이 사랑한 스타였다. 필자 또한 동년배로서 당대 최고 인기 연예인이었던 그녀의 성장 과정과 화려한 전성기, 비극으로 끝난 마지막 모습까지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본 팬이었다. 특유의 밝고 사랑스러운 미소와 통통 튀는 매력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이들을 그녀에게 빠져들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그녀가 생을 마감하기까지 남긴 수많은 작품 중에 유독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이 있다. 무명에 가까웠던 그녀를 단숨에 CF 스타로 우뚝 서게 해준 유명한 VTR 광고가 바로 그것이다. 이 광고에서 그녀는 남편을 빨리 귀가시키기 위해 남편이 좋아하는 축구 경기를 녹화해 놓고 기다리는 다정한 아내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여기에서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 되는 대사가 등장한다.

“남편 퇴근 시간은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 숱한 패러디물을 양산할 정도로 파급 효과가 컸던 그 광고 문구는 당시의 시대상을 정말 잘 대변해주고 있었다.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다’란 짧은 문장에는 (결혼한) 여성의 행복은 전적으로 배우자를 잘 받들어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데 있다는 메시지가 함축돼 있었다.

돌이켜보면, 아내의 역할을 남편의 사회 생활을 잘 뒷받침해주는 것으로 한정하고 있는 지극히 남성 편향적이고 전 근대적 사고방식의 산물인 그 광고가 당시 아무런 논란이 되지 않고 인기리에 방영되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오히려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당시에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사고방식이었으니까.

시간이 흘러 우리 사회의 성 역할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여성이 경제활동의 주체로 자리 잡은 지 오래 이고, 정치·경제·문화·예술 등 사회 전 분야에서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다.

여성의 행복한 결혼생활은 남편에 대한 충실한 내조가 아니라, 부부간의 무한한 신뢰와 존중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모두가 인식하고 있다. 그렇게 세상은 변하였고, 변해가고 있다.

이러한 사회 변화의 흐름 속에서 공직사회도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다’의 왜곡된 인식이 통하였던 시대에서 양성평등이 중요시되고 있는 이 시기까지 흘러온 시간은, 공교롭게도 필자가 공직 생활을 해온 기간과 거의 일치한다. 육아휴직을 하면 책상을 빼야 하는 줄로만 알았던 시대를 지나 지금은 남녀 공히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때로 더디게 느껴지지만 분명 우리의 성평등 문화는 조금씩 전진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은 멀다.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나 아직도 공직사회 내부에 ‘유리천장’이 남아 있다. 개인의 적성과 능력에 따른 부서 배치가 아니라 성 고정관념에 따른 인사가 여전히 비일비재하다. 

필자는 이러한 부조리와 잘못된 관행 타파에 동료 공직자들이 함께 해주길 바란다. 우리의 조직 문화는 결국 우리 하기 나름 아니겠는가! 공무원들이 먼저 바람직한 성평등 문화를 형성해 나간다면 민간 부문에 이르기까지 성평등 문화의 혁신을 확산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평소 당연스럽게 여기던 행동들을 하나하나 돌아보며 바로잡는 습관을 들여보고자 한다.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 가야 할 양성평등의 길은 여기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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