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중국 신화에는 예(羿)라는 명궁이 나타납니다. 요 임금 때 예는 활을 잘 쏘았는데, 어느 날 하늘에 해가 9개나 뜹니다. 사람들이 뜨거워서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예가 활을 쏘아서 하나씩 떨어뜨립니다. 마지막 1개를 떨어뜨리려고 하는데, 그걸 떨어뜨리면 너무 차가워진다고 하여 나머지 한 개는 그대로 두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해가 하나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백성들을 괴롭히는 사방의 괴물을 퇴치합니다. 소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했다고도 하고 뱀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했다고도 하는 괴물인 알유, 북방의 흉수(凶水)에서 말썽을 부리는 머리가 아홉 개 달린 물과 불의 괴물 구영, 청구(靑邱) 지역 호숫가의 사납고 거대한 새인 대풍, 코끼리까지 삼켜버리고 동정호에서 사람들을 잡아먹는 남방의 파사, 긴 이빨에 날카로운 발톱을 지닌 거대한 멧돼지로 농사를 망치게 하는 봉희 같은 것이 그것들입니다. 이들을 모조리 퇴치함으로써 세상에 평화가 왔다는 이야기입니다.

가만히 보면 예는 중원 사람이고, 중원을 중심으로 각기 사방에 괴물들이 사는데, 그들을 퇴치한 공을 예가 활쏘기로 세운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여기서 말하는 중원은 중국의 한복판으로 한족의 활동 공간을 말합니다. 한족은 원래 황하 북부의 유목지대 출신입니다. 농경이 시작되면서 점차 남하하여 이 때, 즉 요 순 우 임금 때쯤이면 황하 중류까지 내려옵니다. 중원이란 남쪽 양자강과 북쪽 황하 사이의 땅입니다. 그래서 중(中)입니다. 당나라의 수도 장안과 주나라의 수도 낙양 언저리라고 보면 좀 더 정확할 것입니다.

신화는 원래 한 겨레의 첫 모습을 묘사한 이야기입니다. 원시시대에 나 외에는 모두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들이고, 사람의 입을 통하여 남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이상하고 신기한 것들을 중심으로 상상됩니다. 그렇게 상상된 존재들입니다. 이들이 동서남북 사방에서 나를 위협하죠.

여기서 청구는 동쪽을 말하는데, 지금의 한반도가 아닌 것은, 남쪽을 동정호라고 한 것으로 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이때의 남쪽은 지금의 동정호를 말하는 것이니, 동쪽 청구의 호숫가라는 것은 아마도 황하 하구의 뻘 지대를 말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쪽에는 이민족인 동이족이 살았거든요.

결국 한족인 예는 중원을 차지하고서 그 주변의 여러 겨레와 싸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이 신화로 정착한 것이고, 여기에 등장한 이상한 괴물들은 바로 한족과 싸운 사방의 이민족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역사시대로 접어들면 이들은 동이, 서융, 북적, 남만이라는 이름의 오랑캐로 자리 잡습니다.

하필 활쏘기 능력으로 이 괴물들을 물리쳤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때의 활쏘기는 그런 능력이 없는 주변 사람들에게는 오늘날의 대륙간 탄도탄 미사일 같은 두려움을 주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활쏘기는 인간이 신으로부터 권능을 받는 상징물로 신화에 자리 잡습니다. 주몽이 활을 잘 쐈다고 한 것은 바로 그런 것을 뜻합니다. 심지어 주몽이 엄체수에서 부여군에게 쫓길 때 하늘을 탓하며 활로 강물을 치자 자라와 물고기가 떠올라서 강을 건너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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