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치권에서는 ‘빈곤 포르노’라는 말에 대한 논쟁이 치열하다. 더구나 ‘포르노’라는 혐오성 단어를 달갑게 생각하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만큼 ‘포르노’ 하면 성(性)과 관련된 일반적인 상식으로 여기지 않아 더 그렇다.

어른 세대들 역시 혐오감이 높은 ‘포르노’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당연히 사회적으로 통용되지 않는 ‘빈곤 포르노’라는 생소한 말에도 거부감이 클 수밖에 없다. 아무리 상대방에게 거슬리는 말이라도 도를 넘는 막말은 안 된다.

현재 국회는 국정감사가 한창이다. 국정감사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고성의 폭언과 막말 파문이 높아진 국감 현장은 국민들의 시각으로는 볼 때,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일반 국민들도 말하기 낯부끄러운 어휘를 아무 거리낌 없이 구사해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다. 국회의원에 대한 자질을 의심케 하는 언행으로 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빈곤 포르노’라는 말은 영국 더타임스 칼럼니스트 앨리스 마일즈가 2008년 개봉한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비판에 사용했다고 알려졌다. 이 영화는 영국민과 세계 관객들에게 인도의 가난을 즐거운 오락거리로 활용됐다는 지적으로, 팬과 평론가의 논쟁거리가 됐다.

결국 ‘빈곤 포르노’라는 말은 좋게 평가될 수 없다고 입증된 셈이다. 특히 포르노(porno)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의 성적 행위를 노골적으로 묘사해 성을 자극하는 책, 영화, 사진, 그림 등을 통틀어 이른다’라는 뜻이다. 거부감이 높은 어원으로 통할 수밖에 없는 말이다.

말에는 그 사람의 품성이 그대로 나타난다. 더구나 인품이 넘치는 말은 사람의 마음까지 움직이게 된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다. 또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는 속담 역시 말에 대한 품성을 꼬집는 비유법이다.

상대방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달변가는 아니더라도 인품과 겸양을 갖춘 말솜씨는 누구라도 마음을 움직이게 된다. 태도와 말씨가 공손하면 상대방도 부드러울 수밖에 없다. 듣는 사람이 불쾌감을 갖는 언어는 자기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다.

그만큼 말은 우리 생활속에서 상호 의사를 교환하는 예절을 지켜야 할 정도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상대를 배려하는 훌륭한 말솜씨는 듣는이의 신뢰와 환심을 사게 된다.

올해 열리는 국회의 국감장은 막말의 표본실이라 할 정도다. 이렇듯 국감장은 국민의 귀와 시선이 쏠려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야 구분 없이 막말을 계속 쏟아냈다. 고성과 막말을 빼면 들어야 할 말이 별로 없다는 게 국민들의 지적이다.

가뜩이나 여·야 정치권의 협치가 어려운 상황에서 막말 파문으로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지는 모양새다. 새롭게 분위기를 쇄신하는 정치권의 긍정적 마인드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특히 여·야의 정치권을 넘어 전체를 아우르는 시대 전환의 긍정적 마인드는 국민들에게도 높은 호감을 얻게 된다. 그동안 국회 회기 때마다 벌어지는 막말 수준의 공방은 없어져야 할 백해무익한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는 의원들 스스로 편향된 시각보다 긍정의 혜안이 필요하다. 국민의 귀를 거슬리게 하는 혐오성 막말, 이제는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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