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

<손님>이 <고객님>으로 대체된 것은, 불과 몇년 전의 일입니다. 한 유통회사에서 자기네 매점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고객님>이라고 부르자고 한 이후, 그게 모든 가게로 확산되면서 벌어진 일입니다. 회사가 한 사회의 말까지 바꾸는 힘이 생겼으니, 이걸 회사 탓을 해야 할지 생각 없는 사람들 탓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근래에 벌어지는 국어운동을 보면, 학자 개인을 위한 광고인지 우리말의 앞날을 걱정하는 건지 구별이 안 가는 일도 많습니다.

<손님>의 ‘손'은 신(神)을 뜻하는 말입니다. 옛날에 홍역을 <손님마마>라고 했는데, 이때의 <손>이 바로 신을 뜻합니다. 그래서 저절로 <님>이 붙은 것입니다. <하늘> 뒤에 <님>이 붙어서 저절로 <하느님>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왜 이렇겠어요? 바로 신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원래는 무당들이 쓰던 말인데, 이것이 사람에게 내려와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할 만한 대상을 가리키는 말로 자리잡은 것입니다. <단골>도 마찬가지이지요.

그러니 우리 사회에서 어떤 사람을 <손님>으로 부른다는 것은 그를 가장 존경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쓰인 지가 벌써 몇 천 년입니다. 존경하는 사람을 신으로 대한다는 말은 우리가 늘 쓰는 예법입니다. 즉 <고맙다>가 그것입니다. <고맙다>의 짜임은 <고마+압+다>인데, <고마>는 북방어로, 신을 뜻하는 말입니다. 단군신화의 <곰> 토템도 사실은 토테미즘의 영향이 아니라, 신을 뜻하는 북방어인 <곰>을 짐승으로 이해하면서 생긴 민간어원설일 뿐입니다. <고맙다>는 <당신을 신으로 섬긴다>는 뜻입니다. 이 얼마나 황송한 일입니까? 우리말에는, 이렇게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 아주 잘 살아있습니다. <손님>도 그런 경우입니다. 굿에서 내려오는 신을 맞듯이 당신을 반갑게 맞이한다는 뜻입니다.

<고객(顧客)>은 특별히 돌아보아야 할 사람을 뜻합니다. 우루루 몰려든 사람들 중에서 나에게 필요한 사람이 있나를 돌아볼 때 걸려드는 사람을 뜻합니다. 저잣거리에서 물건을 찾는 사람들은 고개를 두리번거리기 마련인데, 눈치 빠른 장사치는 그런 사람을 정확히 찾아보죠. 바로 이런 상황에 알맞는 말이 <고객>입니다.

그러니 <손님>과 <고객>은 얼마나 큰 차이가 있습니까? 저라면 일부러라도 <고객>을 버리고, <손님>을 쓰겠습니다.

사람들은 옛날부터 써온 말을 부지불식간에 씁니다. 이 <부지불식간>이 그 겨레의 집단무의식의 산물일 경우가 많습니다. 언어는 그런 성질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을 바꾸거나 정책을 바꿀 때는, 살얼음을 밟듯이 조심해야 합니다. 전문가들의 논의를 거치는 것은 물론이고, 전문가들조차 놓칠 수 있는 부분이기에 많은 사람의 의견을 오래 들어서 자손만대에 후회가 없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국립국어원에서 하는 짓들을 보면 탄식이 절로 납니다. 자기들이 모여서 뭘 결정하면, 그게 우리 겨레의 판단이 될 거라는 착각을 하는 모양입니다. 옛날과 달리 요즘은 소통 방법이 많아서, 잘못된 것도 순식간에 퍼질 수 있습니다. 이런 일에 대한 경고를 하는 것도 국립국어원의 일일 겁니다. 한 회사에서 상술로 잘못 쓰는 말을 그러지 말라고 엄중히 꾸짖는 일은 과연 누가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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