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테라피 강사

부모에게 자녀란 마음에서든 곁에서든 떠나보내야 할, 언젠가는 독립된 인간으로 서야 할 존재들이다. 자의든 타의든 떨어지지 못하는 부모와 자식들에게 들려주는 감동 스토리 ‘은행나무 열매’는 자연의 섭리를 들어 인간으로서 어쩌지 못하는 생로병사의 과정을 은유한다. 미야자와 겐지가 글을 쓰고 오이카와 겐지가 그림을 그렸다. 번역은 박종진.

책 표지는 굵고 검은 선으로 이루어진 나뭇가지가 서 있다. 작고 노란 열매들이 무수히 달려 있고 노란 머리의 여자아이와 남자아이가 손을 잡고 앙증맞게 나뭇가지 위에 서 있다. 표지그림을 보면 알콩달콩한 이야기로 가득할 것 같은데, 책장을 넘기다 보면 아름다운 문구가 감동스럽고 깊어지는 내용에는 숙연해지기도 한다.

동이 트기 직전의 새벽 별이 가득한 하늘, 사락사락 내리는 서리, 은빛으로 서 있는 은행나무, 깜짝 잠에서 깨어난 은행나무 열매들. 그들이 여행을 떠나려고 한다. 올해에 엄마 은행나무는 천 개의 은행 열매들을 키워냈다. 오늘은 그 아이들이 북풍을 안고 제 갈 길을 찾아 떠나려 한다. 엄마는 슬퍼하거나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그저 부채모양의 황금 머리카락을 모조리 떨구어낼 뿐이다. 아이들은 아이답게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다. 누가 뭐래도 엄마와 같이 있고 싶고, 형제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것도 싫다.

별이 모두 사라지고 동녘이 하얗게 밝아오자 나무가 시끄러워지며 이제 모두 떠날 시간이 된다. 엄마 나무는 그런 아이들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다. 구두가 작아 바꿔 신는 아이들, 외투를 잃어버린 아이, 빵을 건네는 아이.

그 와중에도 아무도 자기 먼저 멀리 가겠다고 하지 않고 서로 위로하면서 부족한 건 함께 하자고 법석을 떤다. 동쪽 하늘은 하얗게 밝아오고 엄마 나무는 죽은 듯이 서 있다.

냉정한 엄마와는 달리 그림작가는 다행히 은행이 둘씩 짝을 지어 떨어지게 한다. 그나마 다행이네 라는 안도감을 준다. 노랑 검정 회색, 단순하지만 절제된 색상 뒤에 숨겨둔 무수한 색들이 독자의 상상력과 깊이 있는 읽기를 도와준다. 국민작가라는 평이 새삼스럽지 않게 아름답고 의미 있는 글들이 그림과 조화를 이루며 감동을 더한다.

교문에서 아이를 기다릴 때면 저 많은 아이들이 모두 행복하게 살아갈 수는 없을까. 등수나 등급을 이 세상에 제 자리를 잡고 살아가자면 저 어린 것들이 얼마나 애를 써야만 할까 안쓰럽고 안타까워졌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경쟁구조를 겪으면 살 고단할 시간들에 막연한 불안을 섞어 가엾어지기도 했다.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 줄 수는 없는지.

그러나 부모를 애태우던 아이들은 시간이 흐르면 자라서 어엿하게 제 몫을 하기도 한다. 홀로 남을 엄마를 염려해주는 어른스러움을 보여주기도 한다. 자연은 쉬임없이 무언가를 하면서 길러내고 또 스러지게도 한다.

그걸 우리는 섭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린 싹의 때가 있고 열매 맺는 때도 있으며 그 열매가 나무 가지를 떠나야 할 때도 맞닥뜨린다. 우리 사는 일도 그러하리라고 초연해질 수야 있으려나, 이 깊어가는 가을날.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