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통대학교 행정학부 명예교수

국가통치조직의 관리·운영에 관한 대표적 공무원 조직 형태를 관료제 조직이라고 한다. 관료제 조직은 엄격한 권한의 위임과 전문화된 직무 체계를 가지고 합리적 규칙에 따라 조직의 목표를 능률적으로 실현하는 조직의 관리운영체제이다. 관료제 조직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인간이 만든 가장 바람직한 조직형태로 관료제 조직을 든다.

모든 것이 다 그러하듯이 효율성을 강조하는 관료제 조직은 이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강조하는 순기능 이외에 역기능을 가진다. 사회학자나 행정학자들은 이러한 관료제 조직이 가지는 역기능을 관료제의 병리 현상으로 부른다. 병리 현상이란 개인이나 집단, 지역 사회나 전체 사회, 그리고 문화 따위에서 나타나는 기능 장애 현상을 의미한다.

90년대까지 한국행정문화는 이러한 관료제의 역기능이 팽대한 것으로 비판받아왔다. 그 대표적인 병리 현상을 보면 먼저 법규만능주의에 의한 동조과잉(同朝過剩) 현상을 들 수 있다. 이는 수단인 법규를 법의 목적보다 중시하는 행태를 의미한다.

다음으로 모든 관료제 조직에서 볼 수 있는 자기 부처를 우선시하고 부처 간에 협력을 등한시하는 부처 할거주의를 지적한다. 오늘날 많은 공공문제는 여러 부처에 걸쳐서 다루어져야 하는 데 부처 할거주의에 의해서 중복 행정, 부처 간 갈등 유발을 가져오게 된다. 그리고 관료제 조직이 가지는 문제점으로 조직 내부의 효율성만 강조하고 외부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변화에 소극적인 조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관료제 조직은 집권화된 의사결정을 특징으로 한다. 모든 의사결정은 최고 관리자에게 있고, 부하는 그의 명령에 복종하도록 한다. 이에 의하여 상관의 지시가 없으면 일을 하지 않는 무사안일(無事安逸) 행태를 보인다. 우리 공무원 조직에서 보여주는 대통령 바라기, 장관 바라기 행태는 이의 전형적인 병리 현상의 모습이다.

이태원 참사에서 156명의 아까운 생명을 지키지 못한 데에는 이러한 공무원 조직이 가지는 전근대적인 관료제적 병리 현상 문화가 있었다. 법규가 없다고 주체가 없는 행사의 인파관리계획을 수립하지 않고, 현장의 우려는 관리자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고 뭉개버리고, 대통령과 장관의 관심 사항이라고 광화문 집회와 이태원 마약과 전쟁만 하고, 3.0 협업은 정권이 바뀌었다고 다시 회귀하여 부처 우선주의가 지배하고 있다. 장관, 청장, 구청장 바라기로 모든 것을 예방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쳤다. 이와 같은 전근대적인 관료문화로 회귀한 데에는 기관장을 비롯한 관리자의 리더십이 변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무엇보다 과거와 같이 참사의 원인을 체계적으로 조사·분석하여 귀중한 교훈으로 삼아서 안전한 사회를 만들려는 자세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 참사를 정쟁 도구화하고, 희생양을 만들어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는 전근대적 정치와 관료문화만 존재하니 다음에는 어떤 참사로 국민들을 슬프게 할 것인지 염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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