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희 시인 네번째 시집 ‘방아쇠증후군’ 출간

[충청매일 김정애 기자] 충북 청주 출신의 박원희 시인이 네 번째 시집 『방아쇠증후군』(詩와에세이/1만2천원·사진)을 출간했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물질적 풍요와 편리함 속에서 오히려 피폐해지는 삶의 이면을 들여다보며 진정한 희망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

시인의 시를 한마디로 얘기하면 ‘폐허에 핀 꽃’이다. 문명이 발전하고 각종 삶의 이기가 만들어지고 우리의 삶이 편리해질수록 우리의 삶은 더 폐허가 된다. 우리의 욕망은 더욱 커지고 욕망이 채워야 할 결핍은 더 늘어나고 그만큼 없는 것들이 더 많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먹을수록 더 허기가 지는 것, 것이 바로 현대문명의 특성이다. 그리고 이런 허기가 세상을 불행하게 만들고 폐허로 만든다. 하지만 시인은 이 폐허 속에서 꽃을 발견하는 심정으로 시를 쓴다.

시인은 자신이 지금 살고있는 현실 그리고 자신이 살아온 과거의 삶 모두를 텅 빈 ‘빈 길’이라는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 길에는 아무것도 없고 바람만이 그곳을 채우고 있다. 그런데 시인은 왜 자신이 살아온 길, 지금 자기 앞에 놓인 길이 ‘빈 길’이라고 느끼고 있을까? 그것은 자신이 진정 바라는 것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빈 길에서 나를 생각한다/이미 없어져버린/시간의 흐름은/내가 안고 온 모든 과거/개인의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남아 있는 것은 오직 시간이 지배하지 않는 빈 길//아무것도 없이 바람만 지나가는 언덕/시선이 머물다 갈 뿐/아무것도 가지지 못한/길에서 있을 뿐//빈 길에서/기다림은/시간 아니면/공간//말없이 바라보는/언덕을 넘어오는 바람/빈 길 ―‘빈 길’ 전문

시인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채우기 위해 일을 하며 돈을 벌며 무엇인가를 만들며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채우기 위한 무엇을 흔히 욕망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욕망은 채워지지 않는다고 전제한다. 아무리 뭔가를 해서 채우더라도 항상 뭔가 더 부족하다는 결핍감을 메꿀 수 없다. 시인은 이 모든 가짜의 욕망을 지우고 세상을 보고 있다. 그럴 때 세상은 시간과 공간을 기다림만이 채우고 있는 ‘빈 길’이 된다. 기다림은 없는 것을 인식하는 행위이다. 결국, 이 ‘빈 길’은 없는 것들이 차지하는 공간이다.

김윤환 문학평론가는 “시의 출발은 언제나 슬픔이지만 슬픔에서 끝나지 않는 해학이 있을 때 독자는 슬픔의 쾌감을 통해 치유의 경험을 얻게 된다”며 “박원희 시인은 시인의 심장을 경유하거나 목도한 비애를 그냥 스치지 않는 예민한 촉수를 가진 시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시집 『방아쇠증후군』은 그야말로 ‘막 휘갈리고 싶은 세상 총 하나 갖지 못한’ 바닥의 사람들에게 비애(悲哀)의 실탄을 나누어 주고 있는 페이소스의 미학이 잘 용해된 시집이라고 밝혔다.

‘송곳니가 빠질 무렵’의 ‘나, 겨울 고양이’가 ‘퇴로’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문패 없는 집’이나 ‘명암지에 앉아’ 있거나 ‘빈 길’의 ‘중심(中心)’을 ‘바라보다’ ‘돌아가는 길’을 잔잔히 보여줌으로 슬픔의 따스한 손길을 내밀고 있다.

시인은 슬픔에 반전(反轉)하는 해학(諧謔)을 놓치지 않아 시를 읽는 재미를 선사해주고 있다. 시 ‘신의 비밀’이나 ‘무궁화호 열차를 기다리며’, ‘돼지’와 ‘옷 한 벌’의 풍경은 시의 패러독스가 어떤 쾌감을 선물로 주는지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세상에서나 자신에게나 울분의 채무가 있는 독자들에게 ‘포만의 세상에서/나는 불빛이 일렁이는 눈물을/먹어본 적이 있’는 슬픔의 묘약을 시인은 이번 시집에 농익게 담아내고 있다.

시인은 영혼마저 찾아올 수 없이 떠돌이로 살고자 이삿짐을 싼다. 시 ‘문패도 없는 집’은 시인이 살고 있으면서도 시인의 영토가 아닌 집이다. 돌아가신 아버지, 어머니의 ‘영혼이 살고 있다면’ ‘찾아올 수 있을까’ 하고 시인이 걱정하는 것은 사실 아무런 영혼도 머물 수 없는 완전한 노마드의 삶을 꿈꾸고 있다는 것을 반증해 주고 있다.

박원희 시인의 시에서 현실은 폐허이고 사막이다. 하지만 세상이 없는 것들만 존재하는 사막이라는 인식은 그 안에 없는 것들을 소망하고 꿈꾸는 희망을 내포하고 있다. 없다는 것은 있어야 할 것의 결핍을 말하는 것이고 그것을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그것의 존재를 더욱 갈망하게 된다. 이 갈망이 우리를 기대와 희망으로 이끈다.

“나는 잠깐 서 있었다. 지나가는 것 앞에서 나는 느리게 아주 느리게 흘러간 것 같은데, 모든 것이 지나가 버렸다. 나 혼자 남은 시공을 두리번거린다”는 시인은 늙어 죽어가는 것은 그냥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뭉쳐 일어서는 꿈’을 꾸는 행위라고 본다. 폐허가 생명으로, 없음이 있음을 위한 희망의 힘으로 전화하는 마술을 경험한다. 이것이 바로 시의 힘이고, 박원희 시인의 시적 성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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