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

2020년 2월에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19로 세상이 바뀐 것은 한둘이 아니어서, 우리 말글에도 그런 영향이 나타났습니다. 방송에서 하는 짓입니다. 젊은이보다 이미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이나 늙은이들이 코로나19에 걸리면 더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늙은이들은 벌써 다른 병을 달고있기 때문에 거기에 코로나19가 얹히면 면역력이 약하여 쉽게 감염되고 또 위험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늙은이들이 코로나19에 걸리기 이전부터 앓고 있던 병을 <기저질환>이라고 방송에서 말합니다. 아마도 의학계에서 쓰던 용어이거나, 방송사에서 급조한 말일 것으로 짐작됩니다. 이상한 건 이미 그런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 있는데도 그런 말을 쓰지 않고 새로운 말을 만들어내서 쓴다는 것입니다. 방송가에 빌붙어 먹고 사는 국어학자들에게 저절로 욕이 나오는 순간입니다. 그런 이상한 말을 만들어놓고서 자신들의 업적이라고 여길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방송가에서 말하는 <기저질환>을 우리는 <지병>이라고 부릅니다. <병>은 탈이라는 말이고, <지(持)>는 ‘가질 지' 자로, 가지고 있던 병이라는 말입니다. '묵은탈'이죠. 이렇게 뻔히 우리가 몇 백 년 쓰던 말이 있는데, 그것을 도려내고 다른 말로 대체하려는 짓들을 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모르면 저한테 좀 물어주십시오. 무식한 것들이 나대면서 그 전의 전통을 도려내고 새로운 자기 공적을 세우려는 작태를 그치지 않는 한, 언어의 전통은 일대혼란에 휩싸여 한 세대만 지나면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결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은어나 비어의 차원이 아니라, 정상 언어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말을 우리말로 쓰지 않으려는 노력은, 참 이해할 수 없는 열정입니다. 어떤 일을 끝낼 때, 문장부호를 빌려서, <마침표를 찍는다.>고 표현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걸 또 <종지부(終止符)>라고 합니다. <종지부를 찍는다.>고 굳이 말하는 거죠. <종지>란 <마침>의 한자말입니다. 이걸 굳이 쓰지 말라고 할 필요는 없지만, <마침표>라는 우리말이 잘 쓰이는데, 굳이 거기다가 <종지부>라는 낯선 한자말을, 끌어다 쓸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한발 더나아가, <쉼표>라는 말을, 또<휴지부>라고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자말도 우리말이어서, 굳이 쓰지 말라고 할 필요는 없지만, 똑같은 대상을 가리키는 여러말이 있을 때, 될수록 순우리말을 써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제 영어까지 들어왔으니, 물음표나 의문부를 두고, 또<케셤마크, 오피스트로피>라고 해야 할까요? 참, 우리말을 피하려는 노력을 어디까지 하려는지, 그 끝이 보이지를 않습니다. 그 열정으로 우리말을, 하나라도 더 찾아쓰려고 하면 좋을 것을!

세종 임금이 날마다 생각납니다. 나무아미타불관세종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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