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시골, 한적한 초등학교 운동장 양옆에 노란 은행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가을이 무르익어가면서 은행나무는 황금 옷을 서서히 벗어 내려놓는다. 은행나무 아래는 금박 같은 융단이 깔려있다. 매년 가을이면 황금색 꽃을 피우는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어린이들은 동심을 키우며 꿈도 노랗게 물들일 것이다.

가벼운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는 은행잎이 운치 있다고 보기에는 너무도 외롭고 아픈 요즈음이다. 이태원 참사로 꽃다운 나이에 목숨을 잃은 젊은 청춘들의 영혼도 저렇게 금빛으로 떠돌고 있겠지,

내가 만약 요요마였더라면 이 은행나무 아래서 ‘아베 마리아’ 첼로를 연주하며 영혼을 달랬을 것이다.

 

아베 마리아! 온화한 이여

거칠고 험악한 이 세상

이 고통을 덜어주소서 어머니

손 모아 비나이다.

 

말로 형언 할 수 없는 이 슬픔, 더 이상 어떤 가사가 필요할까. 다시 바람이 분다. 황금빛을 키운 시월 마지막의 햇살이 바람에 날려 천지가 온통 황금으로 흔든다. 계절이 오고 가는 이 단순한 명제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가을은 빛을 내고 그 깊은 향취를 더 하지만, 무덤덤하다.

복잡하고 어려운 세상사를 아는지 바람이 말을 걸어온다.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바흐도 이 바람이 전하는 말을 들었을까? 바흐의 음악과 함께 어우러지는 구노의 ‘아베 마리아’ 그 신성(神性)이 통하는 멜로디가 어찌 아름답다고만 할 수 있을까, 휴대전화에서 슬픔을 담은 요요마의 첼로 연주가 바람을 타고 우수수 땅으로 떨어져 내린다.

이태원 참사로 꾹꾹 눌러왔던 유족들의 슬픔이 현을 켜고 절망이 바람을 일으킨다. 흔들리는 나뭇가지는 이별의 손짓이고 떨어지는 은행 잎은 눈물이다.

심장에 가장 가까이 닿아서 마음과 영혼을 담아낼 수 있는 것이 첼로라면 기꺼이 이연주를 들어주리라, 침묵의 절규로 모든 고통과 슬픔을 뛰어넘어 숭고함으로 다가와 어지러운 마음을 잔잔히 위로해 주는 천상의 악기가 아닐까,

운동장 곳곳에 풍경처럼 스치는 이 음악은 진혼곡이 되어 떠나간 영혼을 조용히 감싸 준다.

참사 일주일째인 4일,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은 조화 수만 송이와 음식, 술 등이 빼곡히 놓였다. 벽과 철제 난간은 시민들이 손글씨로 적은 포스트잇 메시지 수백 장이 뒤덮고 있다. 형태와 방식은 다르지만, 희생자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민들의 마음은 하나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얀 국화가 쌓여간다. 압사당한 희생자들을 위해 헌화하는 사람들에게 ‘꽃들 포개지도 마라’는 어느 시인의 문구가 떠오른다.

가족을 잃은 분들은 얼마나 큰 한 주가 될지 모를 일이다. 모든 순간을 함께 했던  그 따뜻한 순간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네가 있었기에 내가 살 수 있었거늘, 너는 갔지만, 지금부터 다시 네 나이가 될 때까지 너를 보내지 않을 거야,

내일도 너에게로 올 것이다.

이 가을, 떠나간 이도 보내는 이도 파란 낙엽이었다.

이태원 참사로 이 별을 떠난 젊음은 조금 멀리 있을 뿐 그 기억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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