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충청매일] 아주 오랜 옛날, 천하를 지배하던 주(周)나라도 세월이 흐르자 그 권세가 차츰 약해졌다. 유왕(幽王)은 판단이 어리석어 국사를 논할 줄 몰랐다. 정치라면 늘 골머리가 아팠다. 그래서 간신 괵석보에게 국정을 일임하고 자신은 매일같이 술과 여자에 빠져 지냈다. 하지만 괵석보는 탐욕이 많은 자라 권력을 전횡하여 백성들에게 착취와 수탈을 일삼았다. 이로 인해 백성들의 원망이 하늘을 찌를 듯했다. 하루는 신하 조숙대(趙叔帶)가 급하게 아뢰었다.

“삼천(三川) 지역에 커다란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이로 인해 위수, 경수, 낙수, 세 곳의 강이 메말랐고 기산이 폭삭 무너졌습니다. 강이 마르고 산이 무너졌다는 것은 사람 몸에 피가 마르고 정기가 고갈된 것과 마찬가지로 상서롭지 못한 징조입니다. 더구나 기산은 초대 무왕이 주나라 창업을 일으킨 터전이옵니다. 이는 왕께서 정치를 멀리하시니 하늘이 계시를 보인 것입니다. 하오니 앞으로는 국사에 전념하시고 부디 백성을 불쌍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유왕이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

“그런 것까지 나보고 어쩌라는 것이냐? 내가 지진이 나도록 했단 말이냐? 아니면 지진이 나 때문에 났단 말이냐? 가서 괵석보에게 말하라. 그가 해결할 것이다.”

하고는 조숙대를 내쫓았다. 그러자 태사 백양보(伯陽甫)가 아뢰었다.

“기산의 지진은 양기가 음기에 눌렸기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양기가 자리를 잃고 그 자리에 음기가 있으면 근본이 막힙니다. 근본이 막히면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물과 흙이 서로 스며들어야 만물이 자라고, 그래야 백성이 재물과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물이 흙에 스며들지 못하면 백성이 사용할 재물이 부족해지니 어찌 망하지 않겠습니까? 이전에 이수와 낙수가 말라 하(夏)나라가 망했고, 황하가 말라 상(商)나라가 망했습니다. 지금 주나라 하천의 원류가 막혔으니 마를 것이 뻔합니다. 이는 망국의 징조라 할 수 있습니다. 나라에 환란이 닥치기 전에 서둘러 백성들을 보살피시고 정치를 돌보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유왕이 화를 내며 백양보도 쫓아냈다. 백양보가 조숙대를 만나 말했다.

“아무리 간언을 해도 왕이 듣지 않으니 큰일입니다. 하늘이 돌아섰다고 이렇게 징조를 보여주는데 이제는 어쩔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나라를 떠나는 것이 순리입니다. 천명이 주나라를 떠났는데 우리가 무얼 어찌하겠습니까!”

그날 집에 돌아온 조숙대는 식구들을 모두 불러놓고 자신의 결심을 말했다.

“성현의 말씀에 남의 신하가 되고자 하면 위태로운 나라에 들어가지 말고 어지러운 나라에 살지 말라고 했다. 나는 이제 주나라를 떠날 것이다.”

며칠 후 조숙대는 한밤중에 몰래 식구들과 하인들을 데리고 진(晉)나라로 망명하였다. 충신이 떠나가니 주나라는 가파른 쇠락의 길에 들어섰다.

음양착행(陰陽錯行)이란 음양의 운행이 흐트러져 기존 질서가 무너진다는 뜻이다. 지진은 환란의 징조이다. 그래서 잘못된 일을 돌아보고 바르게 처신해서 앞으로 닥칠 재난을 미리 예방하도록 했다. 괴산에서 지진이 나더니 이태원에서 참사가 나고 말았다. 서로 관련 없는 일이지만 왠지 지금은 국정쇄신이 필요한 때라 하겠다. aion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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