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충청매일] 기왕 말이 나온 김에 중국의 고전에 나오는 명궁들과 우리의 활쏘기를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합니다. 우리나라 전국에 흩어진 활터 중에서 이름을 살펴보면 범과 관련된 명칭이 적지 않습니다. 서울에는 석호정(石虎亭), 괴산 사호정(射虎亭), 또 백호정(白虎亭), 덕호정(德虎亭) 금호정(錦虎亭) 같은 이름들이 보입니다. 활터 이름에는 범의 이미지가 많습니다.

활터에서 이렇게 범의 이미지를 취하게 된 원인은 한나라 장수 이광(李廣) 때문입니다. 이광은 원래 흉노족이었는데, 한나라로 귀화하여 자신의 동포인 흉노족과 싸우며 한나라의 명장으로 추앙받은 인물입니다. 흉노족은 기마민족이기 때문에 기사로 유명합니다. 그들과 싸워서 연전연승하던 인물이라 활쏘기에도 뛰어났습니다.

어느 날 이광이 산길을 가는데 범이 나타났습니다. 화살을 걸어서 죽을 각오를 하고 범의 이마 한복판으로 활을 쏘았습니다. 그런데 범이 꼼짝을 않고 있어서 다가가 보니 범이 아니라 바위에 화살이 깊이 박혀있었습니다.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서 쏘아 보았는데 아무리 쏘아도 화살이 바위에 박히지 않았습니다. 이 일화에서 사석위호(射石爲虎), 중석몰촉(中石沒鏃) 같은 고사가 나왔습니다. 이 이야기는 사마천의 ‘사기’에 있는 것으로, 정신 집중을 강조할 때 쓰는 말입니다.

또 한 명궁은 춘추시대 진나라 사람 양유기(養由基)입니다. 양유기의 적수는 반당이라는 사람이었는데, 반당이 100보 밖의 버들잎에 표시를 해두고 쏴보라고 했습니다. 양유기가 연달아 맞추었습니다. 이때의 기록이 ‘양유기는 연달아 화살 셋을 날렸는데, 모두 잎의 한 가운데를 뚫고 지나갔다(去柳葉百步而射之, 百發百中之)’는 것으로, ‘百步穿楊(백보천양)’이라는 사자성어를 남겼습니다. 전주 활터 천양정도 여기서 온 말입니다.

이광은 흉노족 출신이니 흉노족의 활을 쏘았을 것이고, 그 활은 몽골족의 활과 같습니다. 몽골의 활은 우리나라에 견주면 과녁 거리가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기술로 보자면 양유기와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재주는 양유기가 보여주고, 활을 쏘는 마음가짐은 이광이 보여주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양유기의 재주는 우리나라의 명궁들에 비하면 크게 주목할 만한 것이 못 됩니다. 태조 이성계가 왜구를 토벌하러 나설 때 일부러 병사들의 사기를 돋우기 위해 짐짓 연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백 보 밖의 솔방울을 맞히겠다고 말하고, 그걸 맞히면 오늘 승리하리라는 장담을 한 것입니다. 단 한 번에 맞추었습니다. 100보 밖의 버들잎을 맞히는 것은, 중국의 활로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 활로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는 증거입니다.

한번은 홍건적을 토벌하는데, 적장을 뒤쫓아 가는 이성계에게 화살이 날아들었습니다. 이성계가 말 위에서 펄쩍 뛰었고, 화살이 가랑이와 안장 사이로 빠져나갔습니다. 이 정도 비교면 판가름 나지 않을까요? 중국의 설화는 ‘뻥’이지만, 이성계의 이야기는 ‘태조실록’에 실린 ‘사실’입니다. 못 믿겠다고요? 그러려면 얼마든지 그러시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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