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대표이사
비전·전략체계 첫 구축…예술가·단체 직접지원 도입
공공성·공정성 제고 위해 ‘공예관 대관 시스템’ 마련
선발주 후행정 관행 과감하게 개선…윤리감사 역 신설
‘기록문화 창의도시 청주’ 비전 세워 법정 문화도시 선정
2021년 공예비엔날레 구심력 회복해 공예 정체성 확립
바람직한 제도와 시스템, 바람직한 조직문화 줄기세포

4년간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을 이끌어온 박상언(위) 대표이사. 2020년 11월 1일 박상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초대 대표이사가 취임 첫날 동부창고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며 포즈를 취했다.

[충청매일 김정애 기자] 박상언(62)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대표이사가 오는 31일 이임식을 끝으로 청주문화재단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한다.

박상언 대표는 2018년 11월 1일 청주문화재단 신임 사무총장으로 취임해 2년의 임기를 마치고, 재단이 2020년 대표이사 체제로 전환된 후 초대 대표이사로 임기 2년을 재직했다. 박 대표는 4년간 청주문화재단의 조직을 재정비하고 지역문화의 거점기관으로서 위상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충청매일은 박 대표가 4년간 청주문화재단과 동고동락(同苦同樂)하며 어떤 성과를 내고 무엇이 아쉬운 과제로 남았는지, 지나온 발자취를 들어보았다.

2018년 첫 취임식에서 박 대표는 “어떻게 하면 더 공정하고 더 효율적으로 문화예술진흥과 문화산업육성이라는 청주문화재단 본연의 역할을 수행할 것인지 늘 고민하겠다. 조직의 기본 전략과 역량을 재정비해 지역문화 거점기관으로서의 위상과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포부를 밝힌바 있다.

당시 박 대표는 문화재단 스스로 더 높은 전문성과 행정력을 구비하는데 있어 부지런하고 수평적인 리더십으로 견인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청주문화재단의 모든 정책과 전략에 청주문화예술계와 문화산업계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겠다는 각오를 밝히기도 했다. 이를 위해 여러 유관기관 및 단체와 상생협력의 틀을 강화해 문화거버넌스 조직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박 대표는 지난 4년간 이의 실천을 위해 전력 질주해 왔다.

업무에 돌입해 보니 청주문화재단 고유의 청사진이 없었다. 예를 들면 경제개발 5개년계획 같은 마스터플랜이 필요했다.

박 대표는 수원문화재단의 비전전략을 세워 주었던 경험을 살려 청주문화재단만의 중장기 비전 전략체계를 수립하고 이를 대내외에 선포했다. 재단의 비전은 ‘문화로 함께 웃는 청주’로 정했다. 이 비전의 4대 전략목표로 △기록문화 창의도시 △글로컬 문화제조창 △콘텐츠 융복합 기지 △열린 감성문화재단을 표방했다. 하부 계획으로 △시민네트워크 형성 △기록문화 특화 △공예클러스터 조성 △문화 거점공간 활성화 △지역가치 스토리 재발견 △메이드인 청주 확장 △예술단체 네트워킹과 창작생태계 구성 △시민체감 문화정책 실현 등 16대 전략과제도 세웠다.

이처럼 청주문화재단이 자체 중장기 전략시스템을 구축한 것은 2001년 2월 재단 설립 이래 처음이다. 재단의 비전은 사람이 있는 문화, 문화를 통한 사회변화를 강조하는 시대에 맞게 ‘문화도시 청주’로 나가기 위한 실질적인 전략과 계획이라고 판단했다. 박 대표의 평소 문화에 대한 철학이 고스란히 반영됐다고 할 수 있다. 

박 대표는 선포한 전략목표와 과제에 따라 경영목표와 계획을 세우고 모든 단위사업의 재점검과 본격적인 실행에 들어갔다. 그중 하나가 지역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직접지원 방식의 도입이다. 이는 재단 출범 20년 만에 이뤄진 쾌거다.

그동안 문화산업에 열중했던 청주문화재단의 역할을 문예진흥과 저울의 추를 맞춘 것이다. 단순히 문화예술 행사 때 지원하는 제도를 개선해 공모를 통해 예술인 개개인의 창작활동에 직접 지원하는 시스템을 처음으로 구축한 것이다. 2018년 사무총장 취임 때의 약속을 버젓이 지킨 셈이다.

박 대표는 “예술인 직접지원은 ‘문화로 함께 웃는 청주’ 비전과 가장 일맥상통하는 사업이다. 지역 주민이 문화로 함께 웃기 위해서는 청주지역사회의 현장 문화생태계 조성이 선행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문화현장 곳곳의 예술인들을 직접 지원하며 활발한 활동을 유도해야 한다”며 “이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직원들의 우려를 설득해야 했다. 우려한 대로 예술인들 입장에서 금액이 적다는 등의 불만이 발생했다. 청주재단이 처음 시도한 만큼 시스템이 정착돼 지속적으로 지원을 확대하고 발전시켜 나간다면 언젠가 자리를 잡게 될 것이다. 직원들이 외부의 비판을 감수하며 설득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해하고 잘 진행해줘 고맙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음으로 그가 몰입한 것은 지원제도 및 행정운영의 공공성과 공정성 제고를 위한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점이다. 한국공예관 운영의 대관 심사와 안내라는 시스템을 마련해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눠 정당한 절차에 의해 대관 심사를 진행하고 별도의 기획전 등은 운영위원회를 통해 진행되도록 제도를 개선했다. 한국공예관 운영위원회에 대관 심사, 해외작가 교류전 및 기획전의 주제 설정, 작가선정 등의 권한을 부여해 운영의 투명성을 높였다.

박 대표는 “아르코미술관장을 역임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공예관의 시스템을 개선하고 인맥으로 이뤄진 관행에서 벗어나 누구나 공정한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했다”며 “이로 인해 한국공예관의 권위가 생겼고 기획전의 진정한 의미가 살아났다”고 말했다.

청주라는 지역사회 안에서 오랫동안 뿌리박힌 ‘선(先)발주 후(後)행정(화이트 리스트)’이라는 행정의 편법적 관행을 과감하게 개선한 것도 그의 역할이었다. 이 개선은 지역 내에서 지인을 챙겨주려는 관행을 예방할 수 있었다. 이와 함께 ‘윤리감사 역(役)’을 신설해 이 같은 편법·탈법적 관행을 근절하도록 감시하는 역할을 부여했다. 또 직원간의 보직 이동시 인수인계 원칙을 만들고 지키지 않으면 경고를 주도록 했다.

“때로 공공기관이 하청업체들에 휘둘리는 사례가 발생합니다. 대부분의 공공조직이 화이트 리스트 때문에 부패되는 것이죠. 공공조직이 투명성을 유지하고 불법 탈법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이를 근절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공공의 직무를 수행하는 직원들이 직무를 수행하다 맺게 된 끈을 사유화해서는 안됩니다. 공직수행의 가장 큰 적은 사사로움이죠. 조직을 썩게 만드는 원인입니다.”

사사로움을 특별히 경계한 덕분에 청주문화재단 경영이 한층 투명해졌다고 볼 수 있다.

문화산업적인 측면의 진일보도 빼놓을 수 없다. 무엇보다 청주공예비엔날레가 2021년 ‘공생의 도구’로 제 모습을 찾았다. ‘공생의 도구’는 공예의 본질과 가치에 충실하며 공예의 특징을 잘 보여준 전시로 코로나 19 팬데믹 상황에서도 대성공을 거두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이는 공예비엔날레가 갖고있는 원심력과 구심력의 균형을 회복해 공예비엔날레의 정체성을 확립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박 대표는 “공예비엔날레에는 확장과 실험과 융합 같은 원심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이들 원심력 또한 공예의 본질과 정체성이라는 구심력, 즉 공예의 뿌리에서부터 비롯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구심력이 원심력보다 너무 크면 우물 안 개구리지만, 원심력이 구심력보다 너무 크면 그 자신조차 잃어버리는 끈 떨어진 연이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2021년 총감독과 의견이 잘 맞았다”며 “그간의 공예비엔날레 전시는 공예가 아닌 것이 많았다. 청주비엔날레가 주목을 받지 못하고 묻히는 결과를 초래했다. 12회 전시는 100% 공예에 집중했다. 결국 이것이 타 비엔날레와의 차별화를 이뤘고 본질에 충실한 좋은 결과를 내게 됐다. 전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시민의 참여다. 예술행사에서 시민의 가장 올바른 참여는 오직 관객이 많이 찾아와 관람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2021년 비엔날레 ‘공생의 도구’는 비엔날레의 예술성과 위상을 회복하고, 팬데믹 속에서도 지난 20여 년 동안 구축한 공예 네트워크를 통해 다양한 해외작가들의 참여와 교류를 이끌어 낸 점, ‘공예도시 청주’ 선언으로 도약 의지를 표명했다는 점 등이 호평을 받은 바 있다.

다음은 한 편의 드라마 같았던 법정 문화도시 선정의 쾌거다. 박 대표는 문화도시 지정 정책을 비판해왔던 입장이다. 도시간에 경쟁을 새마을 운동 경쟁시키듯 하는 방식이 못마땅했다. 하지만 그가 취임 전 이미 예비도시에 신청된 상태였다. 기왕에 신청이 됐다면 어떻게든 문화도시 지정을 받도록 최선을 다해야 했다. 취임 하자마자 짧은 기간 동안 청주라는 도시를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청주시의 비전은 무엇인가를 찾는 것이 중요했다. ‘기록문화창의도시 청주’로 결정했다.

18개 도시가 실사를 받은 후 마지막 프리젠테이션 발표를 앞두고 전략을 새로 짜는 등 많은 것을 수정했다. 모든 과정이 긴박하게 진행됐다. 직원들이 보름 동안 밤샘 작업을 이어가야 했다. 뒤집기가 벌어졌다. 청주시가 10개 예비도시에 선정됐다. 이어 진행된 최종 심사에서 결국 7개 문화도시에 포함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정부가 주도한 최초의 법정 문화도시 선정에 청주시가 선정됐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컸다.

이의 선정으로 청주시는 5년간 최대 100억원의 국비를 지원받아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기록문화창의도시 청주’라는 비전에 걸맞게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인 ‘직지’의 창조적 가치를 계승한 기억+기록프로젝트, 독립출판 육성 지원, 청주여행 키움, 1인 1책 펴내기, 문화10만인클럽이 주축인 ‘문화다이어리’ 사업 등 기록문화 저변을 토대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중이다. 청주시가 전국 기초자치단체로는 유일하게 공공기록관을 운영하게 됐으며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 개관을 앞두게 됐다. 이렇게 진행된 첫 사업에서 1등을 차지해 인센티브를 받기도 했다.

“현장이 바뀌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노잼도시 청주를 꿀잼도시로 변화시켜 나가고있는 중입니다.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조화같은 문화정책을 버리고 생화같은 문화정책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공간과 장소의 인문적 상호관계 속에 도시의 관광정책을 넘어 문화정책의 한 중요한 열쇠가 있습니다. 그 역할을 해주는 것이 문화재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청주시가 문화도시에 선정된 후 기록문화 예술표현 지원사업을 통해 재단 20년 역사상 처음으로 지역예술인과 단체에 지원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며, 청주문화재단의 3년 연속 경영평가 최고등급 'S' 달성으로 청주의 위상을 높였다는 점 등은 박 대표의 몫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그동안 청주문화재단을 향했던 우려의 시선을 기대와 성과로 보답한 셈이다.

박 대표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지역문화협력위원회 민간위원으로 위촉돼 지역문화진흥기본계획 수립과 지역문화 균형발전에 관한 사항 등을 심의하고 정책 자문에 답하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박 대표는 이 역할을 맡아 “지역문화정책을 모두 아우르는 조직이 지역문화재단”이라며 “지역문화와 지역문화정책의 범위를 넓혀 지역의 삶 전반을 문화정책으로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3월에는 전국 115개 기초자치단체 단위의 문화재단인 전국지역문화재단총연합회(이하 전지연)에서 10년 역사상 최초의 비수도권 출신의 7대 회장으로 선출돼 관심을 모았다

당시 박 대표는 “문화정책과 문화행정 분야에서 오랫동안 최변방으로 인식된 충북이 지역문화정책의 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다”고 밝힌 후 “실질적인 지역문화분권을 통한 지역문화자치의 토대를 조성하는데 가장 큰 지향점을 두겠다. 문화자치는 문화분권을 통해 달성할 수 있다. 우리 삶의 가장 보편적 가치인 문화분야에서 분권을 통한 자치, 즉 실질적인 문화자치는 지역문화정책의 가장 중요한 의제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바 있다.

박 대표는 죽어가는 도시의 중심부와 도시재생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한국공예관이 이전하고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이 함께 자리한 ‘문화제조창 시대’의 정착을 다졌다.

박 대표는 “물리적·경제적 도시재생은 80년대를 전후해 눈에 보이는 재건뿐 아니라 커뮤니티의 회복과 활성화, 90년대와 2000년대를 지나 지역문화의 재발견과 삶의 질에 대한 관심과 함께 문화적 도시재생으로 자리 잡는다. 도시의 잃어버린 문화성을 되찾는 과정이 문화적 도시재생”이라고 피력하며 “도시와 시민이 문화성을 박탈당하고 잃어버린다는 것은 도시와 그 삶이 죽어감을 뜻한다. 문화성이 소멸한 도시는 도시가 아니다. 도시는 문화성을 다시 찾아야 하며, 그것이 바로 문화적 도시재생”이라는 입장이다.

청주문화재단의 공정성을 회복하고 다양한 시스템을 마련한 박 대표가 이제 임기를 다하고 떠난다. 새로운 제도와 시스템 도입은 조직원들이 낯설어 할 수밖에 없다. 이를 잘 보듬고 추스르며 앞으로 전진하는 것도 조직의 대표 몫이었다. 박 대표의 평소 지론인 ‘일신일신우일신(日新日新又日新)’생각이 도왔다.

그는 “어떤 조직에서든 제도가 없으면 실행하지 않는다. 제도의 마련과 그 반복적 실행으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 중요하다”며 “제도가 실천 행위로 이어질 때 비로소 숨 쉬는 시스템이 되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조직의 문화가 싹트고 자란다. 바람직한 제도와 시스템이 바람직한 조직문화의 줄기세포”라는 생각이다.

그는 자칫 공공조직의 구성원이 갖고있는 개인주의와 매너리즘, 행정편의와 무사안일주의를 지극히 경계해 왔다. 각종 심의위원회 운영 개선, 윤리감사역 신설, 문화도시 시민자율예산제와 문화재야행 시민팀메이트제, 굿 거버넌스 실현, 한국공예관 운영위원회의 실질적 운영을 통한 전시 기획의 공공성·투명성 확보 등이 그 결과다.

청주문화재단의 ‘제도 및 행정관행개선’은 그가 4년간 지속적으로 추진한 조직문화 변화의 핵심 과정이었다. 재단의 비전을 ‘문화로 함께 더 큰 청주’로 변경해 해야 할 일이 많았지만 다음 대표에게 미룰 수밖에 없다. 계획하고 진행 중인 사업을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그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청주에서의 일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4년을 지나며 청주 사랑꾼이 됐죠. 아쉬움은 차기 대표에게 넘기고 청주시민으로 함께 하겠습니다.”

박상언 대표는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대 예술대학원 예술경영학 석사, 고려대 대학원 문화콘텐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경영전략본부장과 정책기획실장, 대전문화재단 대표이사, 울산문화재단 대표이사, 아르코 미술관장, 예술인력개발원장 등을 역임한 문화예술정책 전문가다. 개인 저서로 『이성정부에서 감성정부로』 『지역문화재단과 리더십』 『숫자로 풀어보는 문화 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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