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희 청주시 경덕초 교감

나나(가명)는 양복 입은 아버지와 후드 짚업을 입은 외국인 엄마와 함께 교무실에 들어왔다. 학적 담당교사의 요청으로 외국인 전학생 가족과의 상담 자리에 나는 얌전히 마주 앉았다. 갑자기 추워진 10월, 나나 아버지는 땀을 닦으며 가족의 재탄생과 나나의 한국행에 대해 설명했다. 파일철을 뒤적이며 질문에 답변하고, 안내 사항을 메모하느라 나나 아버지는 분주했고, 나나 엄마는 불안과 의심이 뭉쳐진 눈빛으로 우리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외국인은 학교를 선택할 수 있다는 교사의 설명에 아버지는 반색하였지만, 나나 엄마는 집 가까이에서 빨리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학교로 보내야 한다고 나나 아버지에게 속삭였다. 러시아 인근의 나라에서는 2학년이었지만 이제는 나이도 학년도 달라져 1학년이 된 나나는 지금 이 상황에 아무 책임이 없는 눈으로 그저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가며 교무실을 구경했다. 나나 가족 3인은 그렇게 함께 등하교를 하고 있다.

나나 가족을 만나니 오래전 8월 어느 여름날에 나나 아버지처럼 땀을 흘리며 미국 초등학교에서 서류를 보여주며 딸에 대해 설명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나 엄마처럼 의심과 불안이 섞인 눈빛으로 교사의 설명에 집중했고 집에서 가깝고 빨리 영어를 습득할 수 있는 환경을 학교 선택의 최우선으로 결정했던 시간들도 떠올랐다. 한국에서 1학년 1학기를 마친 딸은 미국에서 2학년으로 전학하였고, 남편과 교대로 매일 딸과 등하교를 했다.

등교 시간 보다 일찍 교실에 도착해 차례로 들어오는 친구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나나의 뒷모습은, 그 당시 딸과 함께 학교 식당에 앉아 수업을 기다리던 우리 장면과 오버랩 되었다. 딸의 학교는 담임교사가 교실 문을 직접 열어주기 전까지 학생들을 학교 식당에서 모여 있게 했고, 거기서 누군가는 아침 급식을 먹거나, before school program 수업을 받기도 했다.

패스트푸드 업체가 학교 급식을 직영하는 미국 초등학교는 주로 인스턴트 완제품이나 반조리식을 제공하는 탓에 초반에는 열광적으로 먹던 딸도 몇 달 후 다른 친구들처럼 도시락을 싸달라고 했다. 딸 학교를 드나들며 학구의 경제력과 학교급식 수준의 상관관계에 대해 깨닫고 일단 당황했었다. 급식실에서 수저 가득 밥을 먹고 있는 나나에게 다가가 한국어와 손짓으로 맛있냐고 물어보니 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말을 알아들어서 고개를 끄덕인 것인지, 밥 먹는데 귀찮게 하지 말라고 대충 고개를 끄덕여 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나도 딸처럼 얼마 후 엄마에게 도시락을 싸달라고 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예상해보았다. 그리고 나나엄마도 한국 학교와 본국의 교육을 비교하며 삼단 콤보로 나름의 충격을 받는 건 아닐까 하고 혼자 웃음 지었다.

어린 나이에 타국에서 새로운 생존 언어를 익혀야 하는 것은 무중력 우주에서 산소통 하나 메고 유영하는 우주인의 처지와 비슷하다. 망망한 우주의 길고 답답한 침묵의 장막에 미세한 틈 사이로 빛이 들어오고, 소음 같던 언어에 맥락이 보이면서 의미를 이해하게 되는 때가 나나에게 올 것이다. 그것은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고 돌아온 우주인처럼 당당하고 또 겸허해지는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모국어와 더불어 또 하나의 언어와 눈으로 보게 되는 세상은 예전의 세상과는 다를 것이다. 어디선가 우주여행을 하고 있는 수많은 나나들이 위풍당당하게 지구로 귀환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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