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기원전 809년, 진(晉)나라 목후는 큰아들의 이름을 구(仇)라 하였고, 작은아들의 이름을 성사(成師)라 하였다. 신하 사복(師服)이 이름을 우려하여 아뢰었다.

“구란 원수란 뜻이고 성사란 크게 이룬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이름에는 나름대로 정해진 질서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큰아들과 작은아들의 이름을 바꾸어 지으셨습니까? 이로 인해 훗날 나라가 혼란에 빠질까 심히 염려스럽습니다.”

그러나 목후는 이를 듣지 않았다. 27년 후, 목후가 별안간 죽자 작은아들 성사가 장례를 틈타 난을 일으켰다. 태자 구를 몰아내고 제후에 올랐다. 하지만 나라 밖으로 달아났던 태자 구는 이후 은밀히 나라 안팎에서 세력을 결집했다. 그리고 기회를 노려 거사를 일으켰다. 성사가 거세게 저항했으나 태자 구의 세력을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성사는 결국 나라 밖으로 달아났다. 이어 태자 구가 제위에 오르니 문후(文侯)이다. 문후는 35년 재위하고 죽고 그 아들 백(伯)이 즉위하니 소후(昭侯)이다. 새로운 군주가 등극하자 성사는 귀국을 타진했다.

“소신은 그저 나라 안 시골에서 여생을 보내기를 희망합니다. 하오니 군주께서 제 작은 소망을 허락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제 늙어 죽음을 앞둔 처지입니다.”

소후는 가문의 화합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작은아버지 성사를 불러들였다. 그리고 곡옥(曲沃) 지역의 대부로 임명하였다. 이후 성사는 곡옥을 잘 다스려 도읍 익성(翼城)보다 크고 번화한 도시로 만들었다. 진(晉)나라 신하들이 이를 우려하였다.

“가지가 근본보다 크고 민심을 얻었으니 어찌 난이 일어나지 않겠는가!”

얼마 후 곡옥 땅의 성사가 죽고 그 아들 선(鮮)이 이으니 곡옥 장백(莊伯)이다. 장백은 군대를 열심히 키웠다. 어느 날 진(晉)나라를 장악하고자 도읍 익성으로 쳐들어갔다. 아주 유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주나라가 개입하여 어쩔 수 없이 곡옥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장백이 죽고 그 아들 칭(稱)이 뒤를 이으니 곡옥 무공(武公)입니다. 무공은 강한 군대를 물려받았기에 기반이 탄탄했다. 이를 기회로 여러 번 진(晉)나라 익성으로 쳐들어갔다. 처음에는 애후를 죽이고 두 번째는 그 아들 소자후를 죽이고, 세 번째는 제후인 민(緡)을 죽였다. 무공에게 아주 유리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주나라가 개입하려 했다. 무공은 이때 이전의 실패를 교훈 삼아 새로운 전략을 구사했다. 진(晉)나라의 모든 보물을 주나라 희왕(釐王)에게 뇌물로 바친 것이었다. 희왕은 엄청난 뇌물을 보자 너무도 기뻤다. 그래서 무공을 인정하였다.

“진(晉)나라의 새로운 제후로 곡옥 무공을 임명하노라!”

이로써 초대 성사에서 장백을 거쳐 무공에 이르기까지 3대 67년 만에 진(晉)나라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는 ‘춘추좌씨전’에 있는 고사이다.

초부득삼(初不得三)이란 처음에는 실패하였으나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면 세 번째는 성공한다는 뜻이다. 목표를 잃어버리지 않고 꾸준히 하다 보면 반드시 성공의 묘수를 발견한다는 의미로 주로 쓰인다. 값싼 것은 단숨에 이룰 수 있지만 크고 귀한 것은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세상의 이치는 얼마나 오래 버티느냐, 얼마나 꾸준히 하느냐가 승패를 가르는 법이다.   aion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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