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청주우편집중국장/수필가

딸네 가족이 방학 때 미국 하와이로 아이들 어학연수도 시킬 겸 휴가를 가면서 키우던 강아지를 맡기고 떠났다.

직장 때문에 사위는 늦게 출발하여 열흘 정도만 보면 되는 줄 알고 받았는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두 달 넘게 강아지와 씨름을 했다.

전에 여러 번 만나서인지 첫날부터 별로 낯설어하지 않고 적응을 잘하여 안심은 되었지만 자기 가족과 떨어졌단 생각에 측은해 보였다.

생활환경이 바뀌었고 주인이 다르니 아무래도 어색하고 매일 만나던 식구들이 얼마나 보고 싶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딸네가 멀리 여행을 걱정 없이 다녀오도록 도울 수 있는 건 가족처럼 여기는 녀석을 잘 돌보아주는 거라고 마음먹고 정성을 다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 부부 생활 패턴이 바뀌어 매일 아침 용변처리와 운동을 위해 셋이 함께 움직였다.

나가서 볼일을 보고 오면 집에서의 일이 줄어들어 비 오는 날 빼고 매일 아침 산책을 시켰다.

며칠 지나자 아침만 되면 밖에 나가자는 신호를 보내고 눈동자가 빛나기 시작하며 떼를 쓰는데 귀찮기도 했지만 귀여웠다.

비가 오는 날은 어쩔 수 없이 혼자 운동을 나가곤 했는데 어느 날 다녀와 보니 사단이 생겼다.

녀석을 떼어놓고 나간다는 미안한 마음에서 이불을 안 개고 조용히 나간 게 화근이었다.

돌아와 보니 녀석이 이불 위에다 화풀이를 보기 좋게 한 것이다.

오후에도 혼자 운동을 나가면 몇 번 침대 위에 용변을 봐놔 우습기도 했지만 사람 못지않게 영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 아닌 외출 복장으로 갈아입으면 저를 안 데리고 가는 걸 알고 마치 사람 삐친 거 마냥 시무룩한 모습을 보이며, 나가는 거 쳐다보지도 않고 저 좋은 곳에 가 엎드리고 눈동자만 굴려 응시하곤 한다.

옛날부터 개는 영물이라고 했는데 같이 두 달간 생활해보니 정말로 영리하고 생각하는 게 사람과 비슷한 데가 많다고 느꼈다.

어릴적부터 동물을 좋아했지만 실내에서 기르는 건 반대했다. 아들하고 딸이 초등학교 시절 강아지 사달라고 떼를 쓴 적이 있다. 집에서 키우면 털하고 냄새 때문에 안된다고 반대를 하다 어느 날 아들 일기장을 보고 어쩔 수 없이 사서 기르게 됐다.

일기장에 수시로 ‘아빠가 강아지 사주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 있어 필자 어린 시절 병아리 사다 키운 생각이 나 결국 지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얼마 키우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보내 아이들이 상처를 받아 지금 자기가 키우는 개나 고양이에게 더 사랑을 준다고 한다.

반려동물을 키우면 아이들에게 정서적으로 좋다고는 하지만 털과 냄새를 없애려면 무엇보다 부지런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제일 문제가 털인데 털이 사람 입으로 들어가면 폐에 지장이 있다 하니 어린이들 건강을 위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떠맡아 돌본 녀석 때문에 한동안 어려움도 있었지만 가고 나니 뭔가 허전하면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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