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를 겸비한 뛰어난 무신이자 함안 윤씨의 공주 입향조

[충청매일 김태영 기자] 공주시는 조선 후기 뛰어난 무신이자 백두산 정계비 건립에 공을 세우고 공주를 고향으로 삼은 함안윤씨의 공주 입향조 인물인 충민공 윤각 선생을 10월의 역사 인물로 선정했다고 3일 밝혔다.

선생의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여성(汝誠)으로 지난 1697년(숙종 23) 형인 윤원과 함께 공주 요당(공주시 의당면 월곡리)으로 이주하게 되면서 공주와의 인연을 맺게 됐다.

이어 지난 1699년(숙종 25) 무과에 급제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한 선생은 이후 길주목사, 삼도구순통제사, 총융사, 한성부좌윤, 병조참판 등 지방직과 중앙직을 차례로 역임하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선생은 군의 기강을 확립, 국방을 튼튼히 하는데 노력했으며 무관이었지만 책을 가까이하고 사려가 깊어 백성들을 대함에 있어 공정하여 많은 백성들이 선생을 따랐다고 전해진다.

지난 1712년(숙종 38)에 함경남도 병마절도사가 되어 백두산 남쪽 산천의 형태를 정확하게 조사해 백두산 정계비 건립에 큰 기여를 했는데 이를 통해 조선과 청나라의 국경을 확립하게 됐다.

선생은 지난 1721∼1722년에 걸쳐 일어난 신임사회(辛壬士禍)때 역모지원금을 지원했다는 무고로 인해 유배형과 혹독한 고문을 받았지만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자복(自服)하지 않았으며 결국 그 후유증으로 인해 1724년(경종 4) 60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그러나 영조 즉위 후 신임사화를 소론 측의 무고라고 판정한 지난 1725년(영조 1)의 을사처분(乙巳處分)으로 인해 선생은 관작이 회복됐으며 병조판서를 증직 받았다.

그리고 지난 1783년(정조 7)에는 조정으로부터 충민(忠愍)의 시호를 하사받았으며 1805년(순조 5)에는 부조묘(不祧廟)인 충민사(忠愍祠)를 건립하게 됐다.

지난 1824년(순조 24)에는 의당면 월곡리에 있던 요당서사(蓼塘書社)에 배향됐다.

현재 의당면 월곡리에는 선생의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선생의 행적과 관련된 충민사와 부인 광주김씨를 기리는 정려 등이 남아 있어 선생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조병철 문화재과장은 “문무를 겸비한 조선후기의 뛰어난 무신이자 백두산 정계비 건립에 공을 세운 충민공 윤각 선생의 삶과 업적을 기리고자 10월의 역사 인물로 선정했다”며 “10월 중 시민을 대상으로 윤각 선생 관련 프로그램을 개최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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