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중산고 교감

지난 일요일 밤 오랜 친구의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다. 친구와는 대학 신입생 때 만나 우정을 나눠온 막역지우(莫逆之友)다. 그 친구와 나는 1학년을 마치고 휴학하여 같은 날 입대를 했다. 306보충대를 거쳐 경기도 연천 대광리 GOP 철책선에서 보초를 서다 제대하고 복학하여, 매일 붙어 다니며 온갖 추억을 공유한 친구다.

갑작스러운 친구의 방문 목적을 물으니, 만다라의 작가 김성동 선생님이 돌아가셔서 조문을 오는 길이라고 했다. 김성동 작가가 말년에 충주에 내려와 사신다는 이야기를 스치듯 듣고, 워낙 작은 도시라 오가며 뵐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별세소식을 들으니 안타까웠다.

친구는 작가의 마지막 책 ‘눈물의 골짜기’의 편집자로 자주 만난 인연이 있다고 했다. 원고를 교정하며 이야기를 나누면서 작가의 삶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고 했다. 좌익활동을 한 아버지를 잃고 방황 끝에 입산하여 승려생활을 하다 승적을 박탈당하고 소설가로 이름을 알리기까지 그의 삶이 얼마나 파란만장 했을지 짐작이 간다. 말년에 병환으로 충분히 더 오래 글을 쓰실 수 있는 75세라는 나이에 돌아가신 게 안타깝다.

자식들도 있을 텐데 빈소에는 작가의 누님만이 상주로 자리를 지키고 계셨다는 걸 보니 개인사적으로도 순탄치는 않았던 모양이다. ‘만다라’를 비롯하여, ‘국수’ 등 역작을 수없이 남긴 대작가의 빈소가 쓸쓸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며, 비감(悲感)과 함께 한 시대가 저물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고등학교 때 어머니가 사준 삼성출판사에서 나온 제3세대 한국문학 전집에서 만난 김성동, 황석영, 이문열, 이청준, 이문구, 김홍신, 한수산 등의 소설을 읽으며 세상과 미래에 대한 막연한 꿈을 키웠다. 그 시절 창문 없는 골방에서 소설 속 이야기에 빠져들어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크고 넓은 세상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며 머리가 야물어가지 않았나 싶다.

컴퓨터도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이고, 논과 들녘과 강과 강 건너 산뿐인 시골에서 별다른 문화생활을 영위할 수 없었던 그때 만난 한국문학 전집의 세계는 그야말로 별세상이었다. 소설들을 읽고 또 읽으며 문학청년으로 꿈을 키웠고, 국어교사가 되었다. 그 때 읽던 소설들과 아무 내용이나 끄적이던 노트가 없었다면 내 유년은 참으로 빈한했을 것이다.

국어교사가 되어 그 시절에 만난 작가들의 작품을 교실에서 읽고 이야기하며 보낸 세월도 30년이 되었다. 그때 책에서 만난 작가들을 언론을 통해 접하며 동시대의 문제를 함께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고 느꼈다. 비록 어린 시절의 순수와 낭만을 잃고, 자식을 키우며 직장생활에 매몰되어 나이만 먹어가고 있어도, 더 멀리 더 높은 가치를 위해 날아가고 싶은 꿈은 늘 품고 있었기에 그 시절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이 있었다.

하지만, 세월은 흘렀고, 책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던 작가가 내가 사는 지역에 가까이 와서 살다가 별세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이렇게 나의 시대도 가고 있구나 하는 쓸쓸한 생각이 든다. 김성동 작가를 떠나보내며, 이제는 나도 내 삶의 추억과 인연들과 하나씩 이별하는데 익숙해져야 하는 건가 싶어 안타깝다. 고인의 극락왕생(極樂往生)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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