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희/ 청주시 경덕초 교감

강력사건이 발생했다. 월요일 아침, 학교 주차장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니 후문에서 등교지원을 하고 계시던 배움터지킴이샘과 시설 주무관님이 나에게 달려오셨다.

두 분이 기다렸다는 듯이 동시에 뛰어오는 일이라면 보통 일이 아닌가 보다 생각했다. 혹시 아침부터 학교폭력이 발생했나? 그렇다면 생활부장이 뛰어올 텐데? 학생이 다쳤나? 그건 안전부장이 뛰어올 일인데? 그럼 학부모 관련 일인가? 등 짧은 순간 여러 경우의 수를 예측했다.

연세 많은 지킴이샘은 들고 있던 경광봉으로 내 옆 감나무를 가리키며 큰 소리로 말했다.

“교감샘 큰일났어. 아니 어떤 놈이 우리 학교에서 가장 크고 실한 감들을 몽땅 따 가버렸어. 내가 찍은 사진에는 이렇게 감이 많았는디, 이런 나쁜 놈이 있어?” 휴대전화 사진 속에는 어른 주먹만한 감으로 빼곡한 감나무가 지금은 꺾인 가지와 찢어진 이파리들, 그리고 부모 잃은 얼굴을 한 아기감들만 겨우 달린 모습이었다.

현장을 처음 발견한 두 분은 털린 감나무 아래 떨어진 이파리가 마르지 않은 것으로 보아 범행은 직전 주말에 이루어진 것 같다고 했다. 또한 범인은 우연히 학교에 왔다가 우발적으로 감을 딴 것이 아니라 평소에 학교를 드나들며 감과 안면을 튼 면식범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게다가 감이 크고 실해지는 때를 기다렸다가 좋은 놈으로만 골라서 딴 것으로 보아 범인은 사전에 치밀한 작전을 짠 계획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학교 CCTV를 확인해서 범행 현장이 찍혔는지, 범행 후 후문으로 도주하는 범인의 차량이 찍혔는지 확인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방과후와 주말에는 학교 주차장을 인근 주민들에게 개방하니까 정기적으로 학교 주차장을 드나드는 차량 중에 범인이 있는 것은 아닌지, 주차되어있는 차들의 블랙박스를 확인해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혹시 감나무에 범인의 지문이 묻었거나, 근처에 범인이 머리카락을 떨어뜨렸을 수도 있으니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지문과 유전자 감식을 의뢰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현장 근처에 남아 있을 범인의 신발 자국으로 족적을 조사하여 범인의 신체와 직업을 유추하고, 공범이 있는지도 확인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 맞다, 얼마 전 영화에서 본 것처럼 시멘트에도 타이어 자국이 남는다고 하니 이것으로 범인의 차량을 찾아내는 방법도 있지. 나는 그동안 추리소설과 범죄 영화로 익힌 온갖 기법들을 떠올려 보았다.

대충 정리를 끝낸 나는 후문으로 가서 두 분에게 CCTV도 확인하고 경찰에도 신고하면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두 분은 아침과는 사뭇 다른 얼굴로 “경찰에 잽혀가믄 벌금을 물든지 혼날 거 아뉴. 내비둬유. 나눠 먹었다 치믄 되쥬. 감은 내년에도 또 달릴팅께.”하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감나무를 그저 구경하기만 했던 나를 포함한 대부분은 이 사건을 웃으며 넘겼지만, 감나무에 시간과 수고를 쏟은 두 분은 누구보다 화를 냈고 또 누구보다 용서가 빨랐다. 무관심은 자칫 너그러움과 혼동되기 쉽고, 애정은 포용으로 진화하기 쉽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 사건으로 구경하던 감나무를 다른 눈빛으로 바라보게 되니 나는 이를 강력사건이라 하지 않고 감나무의 힘에 이끌린 감력사건이라고 부르고 싶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