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동요의 초석 정순철 재조명 ②
작품 절반 이상 정인섭 등 색동회 회원들과 창작
“목청 좋은 노래솜씨 보다 가사 내용 음미 중요”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당시 대표적인 유희, 율동 동요로 언론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정순철 작곡의 ‘애 보는 애기’(조성문 작사) 악보. 정순철 동요집 『참새의 노래』(1932.1.)에 실린 곡으로 『참새의 노래』에 이 곡이 실리기 전에 최초 곡이 이미 존재했을 개연성이 높다. 정순철이 재직했던 경성보육학교 병설 갑자유치원 원아들이 이 곡에 맞춰 율동하는 장면(매일신보, 1931.1.31.). 매일신보 1925년 8월 30일자에 실린 가사와 동요곡집 『참새의 노래』에 수록된 동요 '어미새’ 악보.

 

[충청매일 김정애 기자] 정순철의 작품으로 현재까지 확인된 것은 총 59곡이다. 1924년에 작곡한 첫 작품 ‘까치야’를 발표한 이래, 1920년대 후반에서 1930년대 중반까지 집중적으로 작곡했다. 일제강점기 말과 해방 이후를 포함해 1950년 납북, 실종 시까지도 꾸준히 작품이 발표됐다. 해방 이후에는 ‘노래동무회’ 활동 등을 통해 활발한 작품활동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나, 한국전쟁기를 겪으면서 작품이 상당수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확인된 59곡의 유형을 분류해보면, 가곡의 성격을 갖는 곡이 ‘가을밤’ ‘세레나데’ ‘비밀’ 등 3곡이며 가요의 성격을 갖는 곡은 ‘종로 네거리’와 ‘샛별’ 등 2곡, 나머지 54곡은 모두 동요에 속한다.

59곡 중 가장 많은 작품을 함께 창작한 작사자는 같은 색동회 회원이면서 경성보육 녹양회 활동(1931∼1933)을 함께 한 정인섭이다. 이어 한국 동시사에 큰 업적을 남긴 윤석중이 그다음으로 많다. 이번 임기현 충북연구원연구위원의 연구에서 ‘물새’의 작사자를 방정환으로 밝혀낸 것은 성과다. 정순철이 평상시 존경했던 방정환과 함께한 작품이 6편이 된 것이다. 전체 59편 중 절반 이상이 되는 32편을 정인섭, 윤석중, 이헌구, 방정환 등 색동회 회원과 함께한 사실이 주목된다.

이들의 작사 내용에 따라 정순철 동요곡의 성격을 살펴볼 수 있다. 정순철은 목청 좋은 노래 솜씨보다 가사의 내용을 제대로 음미하고 부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누차 강조해 왔다. 동요 제목은 작품의 제재와 연결이 되는 것으로, 정순철 작품은 자연을 대상으로 노래한 것이 압도적으로 많다. 자연에서는 현상보다는 동물을 다룬 것이 많고, 동물 중에는 특히‘새, 곤충’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어린이들이 부르는 동요답게 자연을 직접 묘사한 것보다는 ‘의인화’하는 방법을 취했다고 할 수 있다. 자연물을 소재로 인간의 보편적 정서를 자극하는 이러한 노래들은 정순철의 고향인 옥천군 청산면의 깨끗한 자연환경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초창기 동요의 특징은 쓸쓸함과 슬픔의 정서가 깃들어 있지만 정순철 곡의 가사는 긍정적 내용을 가진 작품 수가 더 많다. 주로 원아 동요로 활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희와 재미, 설렘과 희망, 기대를 나타내는 곡들이다.

당시 대표적인 유희, 율동 동요로 언론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정순철 작곡의 ‘애 보는 애기’(조성문 작사)는  정순철이 재직했던 경성보육학교 병설 갑자유치원 원아들이 이 곡에 맞춰 율동하는 장면(매일신보, 1931.1.31.)이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임기현연구위원은 “이번 연구에서 꼭 찾고 싶었던 곡 중의 하나는 해방 직후 조선체육회 의뢰로 윤석중과 함께 호흡을 맞춰 만든 ‘조선올림픽의 노래’다. 조선올림픽은 오늘날의 ‘전국 체육대회가’라고 할 수 있다”며 “당시 경향신문에서는 ‘이 노래 보급을 위해 3만 부를 관람객에 배포했고, 개막식 행사에서 이화여대 합창단의 합창으로 장내를 일층 더 장식했다’(경향, 1946.10.16.)는 기사가 등장했다. 정부 수립 후인 1949년 전국체육대회에서는 역시 윤석중의 작사(가사 일부 변형됨, 후렴구 중 ‘우리 올림픽’이 ‘우리나라 체육대회’ 등으로 바뀜)에 김순애 작곡으로 제목도 ‘체육대회가’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이 곡을 찾는다면 정순철은 국가 단위의 공식 가요로 문교부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졸업식 노래’와 조선체육회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조선올림픽의 노래’ 두 곡을 작곡한 것이 된다”고 밝혔다.

그 밖에 발굴해야 할 작품으로는 연극사적 의미가 있는 작품들이다. 정순철은 경성보육 녹양회 시기(1931~1933)를 전후해 정인섭, 이헌구 등과 함께 동요곡·아동극 운동을 활발히 전개했다. 이 시기 정인섭이 쓴 동요극 ‘허수아비’를 비롯해 ‘오뚝이’, ‘소나무’, ‘맹꽁이’, ‘마음의 안경’, ‘파종’, ‘백설공주’, ‘쳉기통(쓰레기통)’, ‘에밀리종’, ‘사람늑대’ 등 상당히 많은 아동극을 발표했다. 대부분의 아동극 안에는 동요곡이 삽입돼 있었고, 삽입곡은 대부분 정순철의 곡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경성보육 시절에는 동요를 담당한 이가 정순철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아동극을 지도했던 이헌구는 “동요 작곡가 鄭淳哲(정순철) 兄(형)이 童劇(동극)에 삽입되어있는 많은 노래를 작곡했다”(경향, 1973.12.6.)고 밝히고 있다. 또 아동극의 각본을 쓴 정인섭 역시 나중에 작품집을 내면서 “동극 가운데 나오는 노래에도 그분(정순철)의 작곡이 많으나 악보를 잃어버려서 이 책에 실리지 못함을 유감으로 생각하는 바이다”(정인섭, 색동저고리, 정연사, 1962. 183-184) 라고 밝힌 것을 보아 동요곡집 『참새의 노래』에 실린 곡 말고도 훨씬 더 많은 정순철의 곡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함께 이헌구는 자신이 만든 ‘율동 음악 가사’에 정순철이 곡을 붙인 것만 ‘수십 곡’이 된다고 회상했다. 현재 정순철의 작품 중 이헌구의 작사로 된 것으로는 가곡을 포함해서 총 7편에 불과하다.

이 밖에 지나(중국)의 동요 ‘월계화’를 편곡했다는 기록(조선신문, 1933.5.12.)이 나온 것으로 보아 편곡한 곡도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뿐만 아니라 한국 최초의 음악과 무용만을 전면에 배치한 오늘날의 뮤지컬에 해당하는 작품 ‘포기’(헤이워드 부처 작)의 작곡과 함께 음악 감독도 맡은 것으로 확인된다. 이 작품은 극예술연구회의 10회 공연작으로 실제 무대에도 올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작품은 한국 연극사나 뮤지컬사에서 중요한 성격을 갖는 셈이지만 악보가 전해지지 않아 안타까운 실정이다.

정순철의 작곡으로 악보가 확인된 작품 59곡, 가사까지 확인한 작품 11곡, 제목만 전하는 작품 9곡, 정인섭, 이헌구 등의 술회에 따른 동요극, 아동극에 삽입된 곡, 이헌구 작사의 율동 동요 수십 곡, 음악 무용극 ‘포-기’에 삽입된 곡, 해방 후 노래동무회 활동 시기(이 시기만 175곡이 새로 작고되었다고 함)에 남긴 곡을 모두 합하면 최소 100곡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임 연구위원은 “이 곡들이 모두 발굴된다면 1세대 동요 작곡가로 윤극영과 함께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긴 동요 작곡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음악의 초석을 다진 여러 악보들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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