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테라피 강사

결혼이란 복잡 미묘한 단어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쉽지가 않다.

결혼은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할 테니 이왕이면 하고 후회하는 게 낫다고도 한다. 결혼에 대한 적절한 수사인 것도 같다. 스스로 결혼이란 제도에 들어가 살다가 어느 사이 결혼의 굴레에 갇혀버리고 갈등과 회한의 세월을 보내기도 한다.

결혼의 모순에 명쾌한 선택을 할 만한 이야기가 있다면 결혼한 모든 이에게 새로운 자각을 줄 수 있겠다.

비욜레타 로피스의 그림에 구전문학 연구자인 아냐 크리스티나 에레로스의 글이 만나 새로운 결혼의 의미를 일깨워 준다. ‘고양이와 결혼한 쥐에게 일어난 일’은 우선 제목에서 시사해주는 바가 절망적이다. 쥐와 고양이는 천적이다. 분명 쥐는 고양이에게 잡아먹힐 것이기에 뻔한 결말을 예고해 주는듯하지만, 책장마다 전개되는 그림이 상징적이고 기발하다.

스페인의 설화 속 주인공은 잘난 척하기 좋아하는 쥐이다. 옛이야기에서 모티브를 가져왔기에 기본에 충실한 서사로 잘난 척하는 쥐를 성실한 현대 쥐로 바꿔보지만, 제목이 시사하는 바대로 쥐와 고양이는 천적이다. 아무리 어리고 착한 고양이라도 말이다. 현실에서 부부라는 남녀가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그래서 영원히 서로 이해가 불가능한 지점에서, 생각을 가진 인간은 어느 한쪽이 희생하거나 서로 타협해 결혼이란 걸 유지해 간다. 그러나 두 생각이 도저히 합일점을 찾지 못하면 이혼이라는 형식을 찾아 서로 갈라서지만 둘은 상처투성이다.

차라리 어느 한쪽이 월등히 우세해서 잡아먹히지도 못하니 인간의 굴레인 것 같다. 평범한 이야기가 아주 역동적 내용으로 결론 맺어가는 과정은 후반부에서 보여주는 그림의 반란적 서사다. 그 누구도 범접지 못할 비욜레타 로피스 만의 능력 영역이다. 평범하거나 억눌려서 가만히 당하고만 있던 결혼한 여자의 반란이다.

깔끔하고 성실하고 거기에 집까지 가지고 있는 쥐는 여러 동물의 구애도 뿌리치고 내 집이 기뻐한다는 이유로 노래를 잘한다는 이유로 고양이, 그것도 제일 작고 약한 고양이를 선택해 결혼한다.

글 서사는 본 이야기에 충실하다. 그러나 글이 끝나고 여러 쪽의 새하얀 백지 여백을 기반으로 반전의 그림 서사가 펼쳐진다.

그동안 쥐의 생활을 지배했던 모든 사물이 네 쪽이 합쳐진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며 모인다. 어지럽게 모인 삶의 조각들을 몰아내려 한 여자가 빗자루를 들고 서 있다.

정말 감탄이 절로 나오는 작가의 역량이 그림책의 묘미를 준다. 요즘 유행하는 쇼윈도 부부처럼 쥐도 얼마간은 아늑하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그림은 말해준다. 그러나 그저 그런 주변의 물건들은 쥐도 모르는 사이 쥐를 불행하게 만드는 흉기로 변해 행복하다고 여겼던 쥐의 삶을 위협하고 끝내는 고양이가 쥐를 잡아먹게 하는 매개체가 된다.

이 책은 결혼의 기본을 역설적으로 이야기한다. 여자 남자는 이토록 다르다. 완벽하게 다른 존재다. 다름에 자기 기준을 대입하면 상대는 틀린게 된다. 서로 자기가 맞는다고 우길 만한 건 태생적이다. 그런데 이걸 넘어서야 하는 게 결혼관계이다.

결혼은 옳고 그름을 승인받는 장이 아니다. 상대를 인정하고 나도 인정받는 관계이다. 이걸 잊으면 파탄이련만 자주 잊고 혼자 잊고 서로 잊는다. 그러니 모든 관계에서 특별하게도 결혼은 도를 닦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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