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청주예총 부회장

아버지는 나라를 잃은 경술국치(庚戌國恥) 이듬해인 1911년 궁벽한 산골 마을에 가난한 농사꾼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아홉 살에 양친을 여의고, 열여덟 살에 육십 리 떨어진 타향으로 머슴살이 갔다. 스물여섯이 돼서야 열아홉 살 된 어머니를 맞이함으로써 가정을 이룰 수 있었다.

굴뱅이 밭에 목화농사를 지었다. 솜처럼 부푼 가슴으로 어머니는 석유등잔에 불을 밝혀 동짓달 기나긴 밤이 지새는 줄 몰랐단다. 한 올 한 올이 쌓여 한 치 두 치가 되고, 한 치 두 치가 모여 한 자(尺) 두 자가 되더니, 한 자 두 자가 모여 한 필(匹)이 되었다. 그러기를 ‘3년’! 드디어 베를 백 필(匹)이나 짰다.

마을 사람들의 놀람과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 집 새색시 음식 솜씨도 좋더니만 베를 백 필(匹)이나 짰다고 하네!” 베 백 필이라면 엄청난 재산이었다. 논을 사면 열 마지기요, 읍내에서 집 한 채는 족히 살 만한 재산이었다.

어느 날 어머니는 “여보 이걸 가지고 읍내 군청 앞에 백 평짜리 집이 있다는데 그걸 살까?” 아버지에게 말했다. “조금 기다려 봐!” 때 마침 해방이 되어 일본에서 귀국한 집안형님뻘 되는 분이 있었다. “여보 형님이 잘 팔아 준다니 내 줘!”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베 백 필을 내줬다. 하루 이틀! 일주일 열흘! 일거 후 무소식이라! 학수고대 하던 어머니 가슴은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한 달 만에 기름때가 흐르는 초췌한 몰골로 그 아저씨는 돌아왔다. 3년간 땀 흘려 애써 모은 베 백 필을 노름판에 날렸으니 어찌 기막힐 일이 아니랴!

어머니는 평생을 두고두고 ‘베 백 필(百匹)!’성화였지만, 아버지는 한 마디 대꾸조차 없으셨다. ‘군자는 어떠한 어려움에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는 ‘군자고궁(君子固窮)’을 몸소 실천하셨으니, 군자(君子) 중에 군자요, 부처님(佛) 중에 부처님이란 생각이 들었다.

니체는 ‘아모르 파티(Amor fati·네 운명을 사랑하라)’를 강조하였다. 인간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운명(fati)을 저주하거나 미워하지 않고 사랑(amor)할 때 비로소 창조적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다.

노자의 ‘도덕경’에도 천지불인(天地不仁·하늘은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다.

하늘은 응당히 착한 사람에겐 복을 주고, 나쁜 사람 벌줘야 할 텐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게 세상사 아닌가?

요즘 세상을 ‘말세(末世)’니 ‘오탁악세(五濁惡世)’라고 한다. 특히 국민을 계도(啓導)해야 할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자! 세상은 불공평하고,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인 일들이 수시로 일어나는 것이 인생이다. 그래도 군자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저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흔들리지 않는 뚝심으로 버텨낼 뿐이다. 그것이 군자들의 ‘아모르 파티’ 정신이다.

일평생 아버지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不怨天·불원천), 남을 탓하지 않으며(不尤人·불우인) 사셨다. 세상을 뜬 지 벌써 23년이 되었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아모르 파티’를 실천궁행(實踐躬行)하셨던 아버지의 미소짓는 얼굴이 더욱 역력히 다가온다. 고난 속에서도 고난을 해탈(解脫)하였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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