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기원전 627년 춘추시대, 정(鄭)나라는 작은 제후국이다. 게다가 지리적으로 사방이 강대국에 둘러싸여 외세의 침입이 끊이지 않았다. 동쪽으로는 송나라와 제나라가, 서쪽으로는 진(秦)나라가, 남쪽으로 초나라가, 북쪽으로는 진(晉)나라가 자주 쳐들어왔다. 그러니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는 주변 강대국의 노선을 따라야 했다.

정나라 문공 무렵에는 진(晉)나라의 간섭과 통제를 받았다. 이때 정나라보다 작은 활나라가 진(晉)나라를 섬기고 있었다. 하루는 진(晉)나라를 믿고 정나라를 침략해 땅을 빼앗았다. 이에 정나라가 분노하여 활나라를 공격하려 했다. 그러자 진(晉)나라가 공격을 중지하도록 했다. 정나라는 어쩔 수 없이 그 말을 따라야 했다. 그러자 천하의 선비들이 정나라를 호구라 여겼다. 문공은 분통이 터졌다.

“진(晉)나라가 뭐길래 우리 정나라에 대해 이러니저러니 간섭을 하는 것이냐?”

하지만 이 무렵 진(晉)나라 군대는 천하제일이라 감히 함부로 할 수 없었다. 문공은 도무지 분을 삭일 수가 없었다. 비밀리에 초나라와 군사동맹을 맺어 연합으로 진(晉)나라를 공격하고자 했다. 하지만 진(晉)나라가 이를 미리 알고 정나라를 공격해 처참히 무너뜨렸다. 문공이 죽고 목공(繆公)이 즉위하였다.

정나라 목공 원년 봄, 진(晉)나라 영공이 주변 제후들에게 회의 소집을 통보하였다. 이에 목공이 인사를 올리고자 참석했다. 하지만 영공이 다른 나라 제후들은 모두 대면했으나 목공만은 만나주지 않았다. 이는 정나라가 초나라 편에 붙어 두 마음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회의에 참석해서 주최자를 만나지 못한다는 것은 한 나라의 군주로서 아주 치욕적인 일이었다. 이에 정나라 신하 귀생(歸生)이 진(晉)나라 재상 조돈을 만나 불평을 터뜨렸다.

“우리 정나라는 진(晉)나라가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 다 따랐습니다. 그러나 그 요구가 끝이 없어 이제 나라가 망하는 길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면 큰 나라는 덕으로 대하여야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꼬리도 잘렸고 머리도 잘렸는데 이제 우리가 무엇으로 진(晉)나라를 섬긴단 말입니까? 회의에서조차 이렇게 냉대를 하시니 우리가 설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런 상황이라면 우리 정나라는 진(晉)나라를 따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제 물러설 곳도 없습니다. 군대를 이끌고 와서 우리를 공격하신다면 언제라도 좋습니다. 우리도 죽음을 각오하고 결전을 기다리겠습니다.”

이에 조돈이 정나라의 상황을 보고하였다. 그러자 신하들이 말했다.

“이참에 정나라를 복속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지만 영공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이 죽기를 각오하고 덤빈다면 우리 군대가 다칠 것이 아니냐. 그럴 필요 없다. 목공과의 회동을 주선하라.”

그렇게 해서 정나라의 반발을 무마하였다. 이는 춘추좌씨전에 있는 이야기이다.

한사결단(限死決斷)이란 약한 자가 강한 자를 상대로 죽기를 각오한 결연한 결심을 뜻한다. 약자가 죽음을 무릅쓰고 덤빈다면 아무리 강자라 해도 물러서게 마련이다. 싸워봤자 강자는 이로울 것이 없고 약자는 잃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고전 번역가(aion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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