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온깍지활쏘기학교는 2012년 2월에 처음 문을 열었습니다. 졸업생들이 꾸준히 배출되어 동문회가 결성되었고, 동문들은 매년 2차례 정기모임을 엽니다. 

그 모임에서는 경기를 하는데, 봄에는 서울 터편사의 형식인 ‘온깍지 편사’를 하고, 가을에는 옛날 상사대회의 형식으로 치릅니다. 활음계 회원들이 획창을 하도록 유도하고, 획지를 붓글씨로 쓰며, 궁체의 발전이 눈부신 한량에게 그 획지를 줍니다. 시계 바늘을 1940년대로 되돌리는 것이 목표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복장입니다. 1940년대의 활터 풍경은 당연히 한복에 두루마기 차림입니다. 그렇지만 벌써 한 갑자 60년이 흘렀습니다. 옷을 이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온깍지 학교에서는 전복 입기를 권합니다. 전복은 요즘 돌맞이 하는 아이들이 입는 옷입니다. 한복이 일상복 빼고서는 모두 박물관으로 갔지만 전복은 아직도 우리 곁에 남아있어서 그것을 활용하기로 한 것입니다. 대회에 불편한 한복을 입는 것은 마음입니다. 온깍지 학교의 이념을 잘 이해하는 동문들은 될수록 이런 불편한 원칙을 지키려고 합니다.

실제로 봄과 가을 대회를 열면 누가 그렇게 하라고 강요하지 않아도 될수록 한복을 갖춰 입고 오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진을 찍으면 정말 보기 좋은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두루마기까지 갖춰 입은 사람들이 많고, 그것도 아니라면 전복을 입어서 전통의 분위기를 내며, 그것이 어렵다면 생활한복이라도 입고 나타납니다. 물론 평상복으로 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딱히 이렇다고 ‘강요’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형편에 맞게 최대한 갖춰 입고 오는 것입니다. 이런 자율성이 강요로 바뀌는 순간, 문화는 죽고 전통은 껍데기만 남습니다.

온깍지 동문회 모임에서는 늘 이런 감동을 맛볼 수 있습니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하지 않아도 불편함을 감수하고 옛 모습을 보존하려고 합니다. 각궁 죽시를 들고 오고, 옷을 한복으로 입으려고 합니다. 이런 모습에서 문화의 저력과 전통의 정신을 봅니다.

오늘날 활터는 사격장으로 변했습니다. 사격술 이외에는 할 말이 없고, 사격술에 적합하지 않거나 귀찮은 것들은 모두 사라지는 중입니다. 그 사라짐은 제가 집궁하던 1994년부터 가속화되어 지금은 남은 것이 별로 없는 지경입니다. 사격술을 향해 경제성이 집중되는 강력한 단결이 활터를 하루가 다르게 바꿔가는 중입니다.

전통을 지키는 데는 기준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그 기준을 ‘조선의 궁술’에서 찾았고, ‘조선의 궁술’이 원형대로 지켜졌던 1940년대로 돌아가려는 몸부림을 칩니다. 이런 발상과 방향은 모두 ‘조선의 궁술’을 올바르게 읽게 해준 성낙인 옹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못 이룰 수도 있으나, 꿈은 원래 그런 것입니다. 우리는 ‘조선의 궁술’에 다다르기 위해 활쏘기를 합니다. 못 이루더라도 후회는 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이번 생에서 안 된다면 다음 생에서라도 이루어야 할 꿈이기에 그렇습니다. 활터는 그런 곳입니다. 사격장이 아닙니다.

활을 들고 나서면 온 세상이 고요해집니다. 잠시 풍기로 가는 마음을 꾸짖으며 과녁과 나 사이에 놓인 공간을 온작으로 지웁니다. 잠시 후 땅! 하는 목성이 지워졌던 공간을 가득 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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