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 우리암·사애리시·우광복…市, 광복군 지원활동 고증자료 수집

공주시가 선교사 우리암, 사애리시, 우광복(왼쪽부터) 등 3명에 대해 국가보훈처에 독립유공자 포상 신청서를 제출했다.
공주시가 선교사 우리암, 사애리시, 우광복(왼쪽부터) 등 3명에 대해 국가보훈처에 독립유공자 포상 신청서를 제출했다.

[충청매일 김태영 기자]

공주시가 선교사 우리암 등 3명에 대해 국가보훈처에 독립유공자 포상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16일 밝혔다.

시에 따르면 대상자는 선교사 우리암, 사애리시, 우광복 등 3명으로 독립운동 지원 부문에서 3·1운동과 한국광복군 지원활동 등에서 활약했지만 고증자료의 미비로 독립유공자 추서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에 따라 시는 지난 4월부터 공주선교사 독립유공자 추서를 위한 자료조사 용역을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에 위탁해 연구소는 국내는 물론 일본과 인도, 미국 등까지 독립운동 관련 자료 수집을 광범위하게 진행했다.

고증자료를 바탕으로 국가보훈처에 서훈을 신청하고 심사 일정에 따라 빠르면 오는 2023년 서훈 여부가 최종 결정될 예정이다.

시는 공주 영명여학교 설립, 영명학교 설립, 공주3·1운동을 대외에 알리고 한국 독립에 기여한 인물들이 재조명되도록 독립운동가 발굴에 더욱 힘쓸 방침이다.

지난 1883년 미국 콜로라도주에서 태어난 우리암은 1906년 공주로 선교를 오게 되면서 인연을 맺기 시작한 후 1909년 영명학교를 설립하고 1919년 4월 1일 공주 3·1만세운동 준비 및 전개과정에서 영명학교 학생 및 졸업생이 주도가 돼 만세운동이 확산되는 데 기여했다.

이후 일제로부터 지난 1940년 강제 추방된 이후 인도로 이주해 한국광복군 인면전구공작대의 교육활동 등 독립운동을 위해 활약했다.

사애리시 선교사는 지난 1905년 공주 영명여학교를 설립하고 3·1만세 운동을 주도한 유관순 등 많은 항일 여성들을 교육으로 일깨우는 등 공주의 독립운동에 기여했다.

공주 최초 여성 근대교육기관을 설립해 여성 계몽의식을 일깨우는 교육의 터전을 마련했고 김현경, 조화벽, 김복희, 박루이사 등 교사와 졸업생을 배출했다.

우리암 선교사의 아들 우광복은 지난 1907년 인천 제물포에서 태어나 공주영명학교에서 수학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의대를 졸업했다.

이어 지난 1944년 부친 우리암과 함께 한국광복군의 인도 활동을 조력하는 영어교육을 전담하는 데 참여했다.

또 지난 1945년 광복 후에는 미 해군 군의관으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미군정 책임자 하지(Hodge) 사령관의 통역관, 특별보좌관으로 활동하며 대한민국 정부수립에 기여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