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테라피 강사

상식이 몰상식이 되고, 특정 집단들의 난동에 가까운 행위들을 고스란히 지켜봐야 할 때가 있다. 사회를 지탱해 주는 정의와 공정 같은 가치들이 뿌리째 흔들리며 구성원들을 혼란케 하는 시절이 있다.

로빈 자네스 글 코키 폴 그림의 명작 ‘샌지와 빵집주인’은 중요한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주인공 샌지는 젊어서 여행을 많이 한다. 어느 날 전설의 도시 후라치아에 도착하는데 그곳에는 멋지고 진기한 물건들이 많다. 이곳에 잠시 머물기로 하고 작지만 아늑한 방을 구한다.

방 밑에는 작은 빵집이 있어 아침저녁으로 맛있는 빵 냄새가 올라와 좋았다.

가난한 샌지는 여러 가지 맛있는 빵들을 생각하지만, 냄새를 맡는 것으로 만족하고 내려가 자그마한 계피 빵 하나를 산다. 그리고는 주인에게 베란다에서 맛난 빵 냄새를 맡았다고 말한다.

빵집 주인은 화를 낸다. 그 후로도 샌지는 빵집에서 흘러나오는 여러 가지 빵 냄새를 아주 기분 좋게 들이마신다.

빵집 주인이 지켜보는 것도 모르고. 그러던 어느 날 빵집 주인이 화를 내며 샌지를 찾아와서 내 빵 냄새를 훔쳤으니 빵 냄새 값을 내라고 소리치며 위협한다. 빵 냄새는 저절로 올라오는 것이니 돈을 낼 필요가 없다고 샌지가 말한다.

둘은 실랑이 끝에 재판관을 찾아가는데 재판관은 샌지에게 은닙 다섯 냥을 가져오라 한다. 돈이 없는 샌지는 친구들을 찾아가 어렵게 마련한 돈을 재판관에게 가져간다. 그 돈을 어찌 갚아야 할지 걱정하며. 빵집 주인은 돈을 받을 생각에 들떠있다. 재판관은 샌지가 가져온 은화를 앞에 놓인 놋쇠 그릇에 한 개씩 떨어뜨리고 빵집 주인에겐 동전 소리를 잘 들으라 한다. 동전은 각기 다른 큰 소리를 내며 그릇에 떨어진다.

재판관은 빵집 주인에게 동전 떨어지는 소리를 잘 들었느냐고 묻는다. 욕심이 난 빵집 주인은 분명히 잘 들었다고 큰 소리로 대답한다. 그러자 재판관은 네가 들은 그 소리가 바로 빵값이라는 판결을 내린다. 그리고 은닙 다섯 냥은 샌지가 도로 가져가게 한다.

글에는 없지만, 그림에는 기구까지 만들어 빵 냄새를 채집해 들이마시는 장면이 있다. 빵집주인 입장에서는 억울한 면도 없잖아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재판관의 현명한 판결일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이런 명 판결들이 많이 있을까.

법정의 판결이 너무도 기막히게도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매장하는 오판이 오랜 시간과 노력을 통해 언론에서 재조명될 때가 있다.

오판이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조작하는 일도 종종 있다고 하니 잔혹하다. 법과 사회가 복잡한 시대이지만 소시민은 국가기관이 공정하다고 믿어야만 살아갈 수 있다. 그 믿음이 충분의 근거있는 사회일수록 좋은 사회일 것이다. 집단이거나 개인이거나 지나친 처벌을 받게 되는 사회는 두려운 법과 제도의 독재사회일 수도 있다.

명쾌한 판결은 한낱 우화에나 나오는 건 아닐 것이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경찰, 검사, 판사가 될 수는 없으니 민주사회의 본질은 적절한 감시와 박수일 수 있겠다.

예나 지금이나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들은 도처에 있다. 법을 잘 모르고도 소시민들의 평화로운 일상이 지켜지고, 법을 집행하면서도 정의로움으로 안정된 사회를 만들 좋은 판결이 많아지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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