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대 칼럼] 약속
[이종대 칼럼] 약속
  • 충청매일
  • 승인 2022.08.11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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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교문을 지났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교정이 정겨웠다. 시계를 보았다. 약속 시간인 오후 3시 1분까지는 좀 여유가 있었다. 교정을 거닐며 10년 전에 가르쳤던 아이들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그 아이들도 이젠 어른이 되었으려니 싶었다. 그래도 어른이 된 얼굴은 상상하기 좀 힘들었다. 그저 철없는 중학생의 모습으로만 떠올랐다.

그 시절 나는 3학년 담임을 맡고 있었다. 아이들은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처지이면서도 한창 사춘기로 접어드는 시기이기도 했다. 담임교사로서 1년이 지났다. 정신없이 지내왔는데도 왠지 아이들과 헤어지기 서운했다. 그러다가 아이들과 일방적으로 약속을 해버렸다. 졸업하고 10년째 되는 해에 학교 정원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내가 제안한 것이다. 당시 우리 반은 3학년 1반이었다. 그래서 잊지 말자고 3월 1일, 오후 3시 1분에 만나자고 했다. 10년 뒤에 만나자고 했다.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렇게 10년 만에 다시 찾은 교정에서 3학년 1반 담임 반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였다. 과연 어떤 아이가 담임 선생님이 일방적으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곳에 오고 있을까?

드디어 교문 쪽으로부터 부지런히 걸어오는 건장한 청년이 눈에 띄었다. 가까이 다가올수록 그 청년은 내가 가르쳤던 담임 반 학생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마침내 그 청년이 ‘선생님’하고 나를 불렀다. 10년 만의 상봉이었다. 나는 청년을 부둥켜안았다. 청년의 이름은 진성이었다. 반갑고 고마웠다. 10년 전의 약속을 어떻게 잊지 않을 수 있었는지도 궁금했다. ‘어떻게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니?’라는 나의 물음에 진성이는 ‘선생님이 약속을 꼭 지킬 거라고 믿었기에 그럴 수 있었다’고 했다. 한 해도 잊지 않고 한 해 한 해 기다렸다고… 진성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마치 무슨 큰 보상이라도 받는 듯 기뻤다.

진성이와 대화를 하는 동안 또 한 명의 청년이 다가왔다. 역시 ‘선생님’하고 불렀다. 용호였다. 용호는 자신이 바로 며칠 전 내가 근무하는 학교로 전화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쭉 내가 근무하는 곳을 알고 있었다고도 했다. 반갑고도 고마웠다.

그렇게 그해 3월 1일 오후 3시 1분에 담임 선생님을 10년 만에 찾아온 제자들은 두 명이었다. 오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와 준 이제는 엔지니어로 성장한 진성이와 사회복지 공무원이 된 용호가 고마웠다. 그날 나오지 못한 다른 제자들의 철부지 중3의 얼굴도 어른거렸다.

제자들과 즐거운 추억을 들춰내며 교정을 걷고 차를 우리는 저녁이 되어서야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해외 근무를 접고 귀국하여 중3 때 담임 선생님을 찾은 진성이의 얼굴과 그리고 자신의 건재함을 보여드리고 싶었던 용호의 웃는 얼굴이 계속해서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믿음’, ‘인정’과 같은 단어들이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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