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청주우편집중국장/ 수필가

농장 살구나무에 노란색과 황적색의 탐스러운 살구가 주렁주렁 열려 어린 시절 추억을 자아 낸다.

나무 밑에는 비바람에 휘날려 떨어진 살구가 여기저기 뒹굴고 있어 지난 세월과 격세지감을 느끼며 하나둘 알뜰하게 주워 온다.

예전 시골 마을에는 가정마다 복숭아나 살구, 대추, 앵두나무 등이 한두 그루씩 있었는데 그 열매는 배고픈 시절 귀한 양식이었고 어린이들에게는 더욱 유혹의 손짓을 했었다.

지난해에는 앵두와 자두가 많이 열렸으나 올해는 살구가 대신하여 초보 농장주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주고 있다.

어린 시절 살구에 대한 잊지 못할 추억이 있기에 나무에 매달린 살구는 그때의 생각이 절로 나게 하고 동심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필자의 집에는 앵두와 대추나무가 있었고 한집 건너 이웃집 마당에 큰 살구나무가 하나 있었다.

그 시절 이웃집 살구나무에 살구가 빼곡히 열려있는 것을 보고 먹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으나, 언감생심 나무에 올라가 따먹을 생각은 엄두도 못 내고 가끔 길가에 떨어진 걸 주워 먹곤 했었다.

그때는 모두가 배고픈 시절이라 땅에 떨어진 것도 주인은 물론 나그네까지 너도나도 주워 먹어서 어쩌다 운좋게 줍기도 쉽지 않았다. 다른 곳에서 놀다가 혹시 바닥에 떨어진 거 있나 하고 길가에서 기웃거렸을 정도로 먹고 싶고 배가 고팠다.

아침에 일찍 가면 떨어진 게 많고 밤에 비가 온 날은 더 많이 떨어진다는 걸 알았다.

어느 날 아침 밤에 비 온 걸 알고 일찍 가서 몰래 줍고 있는데 안에서 인기척이 나서 소스라치게 놀라 집으로 도망쳐 왔다.

얼마 후 이웃집 할머니가 왔는데 혹여 살구 왜 주웠느냐고 야단치러 온 거 아닌가 하고 뒤곁에서 긴장하며 엿들어 보니 그게 아니었다.

할머니가 바가지에 살구를 하나 가득 담아 오신거였다. 할머니 하시는 말씀이, 집에서 보니까 어린애가 떨어진 걸 줍다가 자기가 나오니까 쏜살같이 달아나더라며, 얼마나 먹고 싶었을까 안쓰러운 마음에 따왔다며 주고 가셨다.

어머니께서는 살구를 씻어 주시며 ‘그 집에도 아이들도 여럿 있고 넉넉하지 않으니 앞으론 그러지 말라’ 하시어 그 후 살구나무 근처에 절대 가지 않았다. 이렇듯 살구는 웃지 못할 추억이 있어 살구나무 밑에 떨어진 것까지 버리지 않고 주워오니 아내는 먹을 수 있는 것만 따오라고 성화다.

어릴 적 추억 때문에 농지를 구입한 첫해에 복숭아, 살구, 자두, 대추, 앵두나무 등을 심었는데 많은 즐거움과 행복을 안겨주고 있다.

이른 봄에는 꽃이 활짝 피어 아름다움을 뽐내며 벌과 나비 그리고 산새들을 불러모으고, 여름부터 가을에는 탐스럽게 익은 열매가 수확의 풍성함을 주고 낭만을 느끼게 한다. 살구를 먹다보니 그때 그 할머니의 자상한 모습도 떠오르고 어머니의 말씀이 생생하게 들려 저승의 부모님이 하염없이 그리워진다.

어린 시절 배도 고파봤고 음식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잘 알기에 평소 무엇이든 맛있게 먹으며 부모님을 비롯한 선조들에게 감사하단 이야기를 자주 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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