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연구원 연구위원

며칠 전, 필자가 만난 20대 중반의 청년은 부모와의 갈등에 시달리고 있다. 청년의 부모, 특히 엄마는 대학에 가지 않은 큰딸이 인생을 잘못 살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고, 독립해야 할 나이에 부모 집에서 사는 것도 창피하다. 딸에게 독한 말을 쏟아내기도 한다. 술을 마셔야 진심을 말하는 엄마는, 취중에 ‘내가 너무 못나서, 너를 뒷받침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라며 울먹였고, 딸은 엄마의 술주정으로 생각하고 술을 끊으라고 잔소리를 한다. 엄마는 유일하게 일상의 긴장과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술을 끊으라는 딸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서운하고 밉다. 그렇게 모녀의 싸움은 또 되풀이 되고 있었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기대와 자식의 부모 기대에 대한 충족 욕구 중 어떤 것이 더 간절할까? 일반적으로 부모의 자식에 대한 기대가 더 크다. 부모 눈에는 자식이 늘 부족하고 성에 차지 않는다. 사랑하지만 늘 부딪치고 다투는 관계가 된다. 부모는 잔소리꾼이 되고 자식 때문에 스트레스를 안고 산다.

그런데, 정작 삶에서는 기대 많은 부모보다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자녀가 더 힘들게 살아간다. 부모의 기대라는 압박을 받고 자란 자녀는, 비록 그 기대를 충족시켰다고 하더라도, 건강한 삶을 살지 못한다. 늘 자신이 부족한 것 같고, 남들과의 경쟁에서 뒤쳐지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으로 산다. 그래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우수한 업무 성적을 받기도 하지만, 그의 삶은 행복하거나 평안하지 않다. 좋은 성과는 잠시의 위안만 줄 뿐, 곧 사라진다. 경쟁의식으로 주변 동료들과도 편하게 지내지 못한다.

우리 부모세대는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갈고닦아서 성공해야 한다는 사회적 가치체계 속에서 성장했다. 노력해서 안 될 것이 없고, 경쟁에서 이겨야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그렇게 성공한(대부분 돈 많이 버는) 사람은 잠시 으쓱대고 살기도 하지만, 그들의 자녀 중 많은 사람이 불행하게 살아간다.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자신과 가족을 희생하더라도 인정받기 위해 지나치게 애쓴다. 성공이 아니라 인정을 위해서 말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면 평안하게 살 수 있다. 물론 그러다 보니 성공하려는 동력이 떨어져서 때론 우수한 성과를 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면 또 어떤가? 부족해 보이지 않으려고 긴장과 불안과 시기심과 좌절이라는 스트레스로 나를 해치며 사는 것 보다 더 잘 사는 것 아닌가? 남들보다 조금 부족하고, 조금 덜 벌고, 조금 덜 인정받아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 내 능력 안의 나를 받아들이면 나와 가족의 행복은 의외로 가까이에 있다.

필자가 만난 20대 청년은, 다행히 자신의 선택을 자책하거나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사랑하는 엄마가 자신의 삶을 인정해 주지 않아 답답하고, 때론 내가 잘 못 사는 것 아닌가 하는 혼란스러움이 있었다. 청년의 엄마가 내려놓아야 할 것이 많겠지만, 스스로 하지는 못한다. 딸은 평생 긴장하며 열심히 살아야 했던 엄마의 삶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부모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따뜻한 말 한마디 들어보지 못한 불쌍한 엄마에게 편지로 마음을 표현해 보라고 권했다. 엄마의 어린 시절 이야기도 들어보고 공감해주라고 권했다. 두 모녀의 삶에 안식과 평안함이 찾아오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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