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

 

[충청매일] 앞서<눈치코치>의말뿌리에대해 잠시말을했습니다. 그런데이<눈치>가서양인에게는 이해하기힘들고어려운모양입니다. 한국에<어서와.한국은처음이지?>라는 텔레비전프로그램이있습니다. 여기에핀란드사람인‘빌푸’가 한국인여성과결혼을했는데, 한국생활에도움이되라고 빌푸의친구인‘페트리’가 책을한권선물합니다. 작가홍은이(Euny Hong)의책인 ‘눈치의 힘(The Power of Nunchi)’입니다. <Nunchi>는물론 <눈치>를소리나는대로적은것입니다. 말을안해도척척알아채는 한국사람의특성을설명한책입니다. 물론홍은이는재미동포2세입니다.

가끔일본정치인들이 다른나라정치인들을만나서 협상을한뒤에, 두나라대표가 전혀다른내용의성명을발표하는 황당한경우가있습니다. 같은자리에서 같은내용을말하고도 서로다른뜻으로받아들인결과죠. 그럴수밖에없는것이 일본사람들은남앞에서절대로 '아니오.'라고말하지않습니다. 그렇다고말해놓고서 눈치를살핍니다. 서양인들은도저히알수없는감각이죠.

일본사람들이 이런데익숙한것은 그들이사무라이의통치를 천년간받은까닭입니다. 말한마디실수에 목이달아나는세월을 천년간이나살아낸것이죠. 그러다보니 칼을든상대앞에서 어떤대화를하든 <아니오.>라고 말할수는없는것입니다. 우선당장은 칼날을피하는 것이 상책이니말이죠. 일단위기를모면한뒤 다른방법으로 자신의의사를전달하죠. 예컨대조상대대로내려온 다기나보검같은물건을 방금전에협상을한상대에게 선물로보내는겁니다. 이것은무슨뜻이냐면, 그다기를찾으러가겠다는뜻입니다. 물론그때는 군대를동원해서가는것이죠. 곧선전포고가되는것입니다. 그래서일본사람들은 상대와이야기하며, 그의말을들을생각은않고 그의표정이나태도의참뜻을알아내기위해 온갖감각의안테나를켜놓습니다. 그리고그의표정과손짓발짓 그리고숨쉬는속도와감각에서 그의진심을읽어내죠. 그리고자리에서일어나는것입니다. 자리에서일어날때는 벌써마음속에결심이선상태입니다. 그리고협상장을나서서 자신의생각을선언합니다.

이게한국이라고다를까요? 똑같습니다. 물론빠르기나세기는다릅니다. 그러나매한가지입니다. 사화를겪고 청일전쟁을겪고 의병전쟁을겪고 독립전쟁을겪고 한국전쟁을겪고 유신통치하의살벌한시대를 견뎠습니다. 어찌<눈치>로살지않았겠습니까? 겉으로말하는것과 그것을말하는사람의표정과태도는 반드시일치하지않습니다. 이런불일치는 소심하고용기가없는사람일수록더합니다. 결국결론을더디게내리고 상대가어떤의지를 분명히보이거나 행동으로옮길때, 자신의방향을결정하죠.

언뜻보면정말비열하기짝이없는짓입니다. 그러나인민군복장을하고 토벌대로나선경찰에게 혹은그반대로 몇차례당한백성들로서는 선뜻자신의마음을말할수없습니다. 그래서어떻게든결론을뒤늦게내려고 말을질질끌게되죠.

충청도사투리가느리다고하는데 실제로저도충청도사람입니다만 대체로충남의서쪽지방의말이느립니다. 천안쯤만와도말이, 서울과견줄때그리느리지않습니다. 물론언론이나방송의영향으로빨라졌겠지요. 느림은 충청도사투리의두드러진특징입니다. 만약에이특징이 앞서말한전쟁의상황과 연관이있다면, 그것은지난오랜역사속에서 충청도가다른지역의지배를받은까닭일것입니다.

<눈치>한마디가 머릿속을어지럽힙니다. 한마디로, 제가눈치가없어서 겪는일입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