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테라피 강사

어느 날이고 강변을 씽씽 달리는 일은 답답한 가슴에 얼마나 후련한 휴식이 되는지. 꽉 막히는 도로, 자동차에 갇혀있는 듯이 가다서다를 반복하다 보면 어지럼증이 일 만도 하다. 그럴 때는 강을 에워 싼 빌딩 숲도 답답하기만 하겠다.

높은 건물들에 앞뒤가 막혀 하늘도 잘 보이지 않고, 계속되는 폭염에는 집밖으로 나설 엄두를 못 내고 에어컨에 의지해 지낸다. 환경을 걱정하며 몸으로 견디는 것도 한도가 있어서 아이들은 금새 지쳐가고 에어컨에게 찬 바람을 주문하게 된다. 안으로는 찬바람이, 밖으로는 뜨거운 바람을 기계는 뱉어낸다. 세상은 더 더워지겠다. 이 답답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깜찍하고 발랄한 이금희 작가의 ‘건물들이 휴가를 갔어요’를 꺼내든다.

표지에는 각양각색의 건물들이 지진이나 난 듯 어지러이 뒤죽박죽이다. 표지를 넘기면 발이 달린 건물들이 한 줄로 나란히 줄지어 어딘가로 향한다.

너무 더워 숨쉬기도 힘든 여름날 어지럽게 간판을 단 건물들이 스모그로 꽉 찬 도시를 떠나 시원한 바다로 휴가를 떠나려 한다. 그런데 고릴라의상실, 별문방구, 서울병원, 왕출판사 등 온갖 건물들이 쿵쿵거리며 앞을 가로막고 올해는 우리가 휴가를 갈 것이라고 말한다. 600살이 넘도록 바다 구경 한 번 못했다는 경복궁, 키가 커다란 63빌딩, 아파트, 사탕 공장이 모두 휴가를 가겠다고 난리를 피운다. 공정한 세상 평등한 사회를 외친다.

우리 가족도 일 년 내내 휴가만 기다렸다며 거기에 맞서 양보하지 않는다. 그러자 주유소가 자기가 기름을 넣어주지 않으면 자동차는 꼼짝 못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건물들에게 길을 내주자 그들은 신이 나서 노래를 부르며 휴가를 떠난다. 집들이 에어컨도 게임기도 다 가져가 무더운 여름날 햇볕 쨍쨍 내리쬐는 세상에 남겨진 사람들. 그때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데 그건 바로 뻥 뚫린 세상에 불어오는 바람이었다. 건물들이 떠난 지리는 바로 신나는 놀이터가 된다. 신나는 휴가가 끝나고 돌아온 날 건물들은 꽃향기 풀 냄새와 함께 온다. 정말로 즐거웠다고 인사를 한다.

우리는 건물들과 약속을 한다. 앞으로는 번갈아 가며 휴가를 가자고. 내년은 우리 차례니까 신이 난다. 오랜만에 집으로 들어오니 온통 꽃향기다.

수도꼭지에선 시원한 계곡물이 콸콸 알록달록 물고기들이 뛰어노는 듯하고 여름 내내 건물들의 머리엔 싱싱한 풀과 나무가 쑥쑥, 시원한 숲속 같다.

아차, 건물들과는 타협을 했지만 매연 내뿜는 시끄러운 자동차는 휴가를 어떻게 해야하지? 작가는 결코 인간들의 이기심을 놓치지 않는다. 우와! 일 년이 지났으니 이번엔 우리가 휴가를 떠난다. 부웅부웅 빵빵 자동차들이 앞을 가로막으며 미안하지만 이번에는 우리끼리 가고 싶은 곳으로 휴가를 갈 거란다. 하지만 자동차 행렬이 뒤 면지를 장식한다. 너무도 신나게 자동차가 휴가 가는 모습, 그 후에 벌어질 일은 독자의 몫이다.

스스로 만든 편의의 함정에서 허우적거리는 인간의 이야기지 싶어 씁쓸하기도 하지만, 건물들 반란 자동차들 반란. 인간이 쌓아올린 문명은 그것들에 둘러싸인 일상에서 유용한 필요를 바탕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복잡하다는 불평은 하지만 별달리 해결방법을 찾지 못한다. 그림책은 이렇게나마 발칙하게 생각한다. 건물과 자동차와 주유소가 휴가를 간다는 건 사람이 사용을 중지하는 것이겠다. 그럴 수 있을까, 그래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가급적 덜 먹고 덜 쓰는 방법들을 찾아보면서 이 더운 한 철을 휴가처럼 보내기로 해야 할는지.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