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희의 모놀로그] ‘간관’의 부활을 꿈꾸다
[이윤희의 모놀로그] ‘간관’의 부활을 꿈꾸다
  • 충청매일
  • 승인 2022.06.22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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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오송중학교 교감

우리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진로 선택을 돕기 위해 해마다 ‘직업 체험의 날’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요즘 트렌드인 가상현실을 도입한 메타버스 활용 직업들과 기업가정신 캠프 등 예전과는 사뭇 달라져서 지켜보는 내내 놀랍다.

그 모습을 보며 나의 학창 시절을 돌이켜 본다. 적성이나 진로에 대한 안내는커녕 고민한 기억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어른이 되어 적성에 맞지 않아서 힘들어하는 이들을 간혹 보게 된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지금의 일에 나름의 보람을 느끼고 있기에 정말 감사하다.

그런데 직업의 유형이나 선호도는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문득 조선 시대에 있었다는 ‘간관’이라는 직업이 떠오른다. 간관은 강력한 발언권을 가지고 정책이나 인사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였고, 임금에 대해서도 항상 바른말을 하는 것을 책무의 핵심으로 삼았다. 간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임금의 중요한 덕목으로 여겼을 만큼 간관의 직분은 아주 무거운 자리였다.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던 간관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세종 때의 ‘고약해(高若海)’를 들 수 있다. 조선왕조 세종실록에 의하면 대사헌을 지냈던 고약해는 세종을 향해 사사건건 서슴없이 직언을 던졌다고 한다. 고약해의 쓴소리에 너무 지쳐버린 세종이 ‘고약해 같다’는 말을 자주 하였고, 이 말이 발전하여 지금의 ‘고약하다’라는 언어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고약하다’의 어원을 정확히 찾을 수 없다는 것이 국립국어원의 입장이다. 여하튼 이야기의 진위를 떠나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세종은 신하들과 격의 없는 토론을 무척 즐겼던 임금이다. 이런 세종이지만 고약해의 거침없는 말과 행동이 마냥 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신하들이 직언하지 못할 것을 걱정하여 고약해에게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고약해는 자신이라도 직언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느냐며 스스로 총대를 멘 것은 아니었을까. 아무리 칭송받는 군주라고 해도 어느 순간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때 임금을 향해 직언할 수 있는 신하는 몇 되지 않는다. 당시는 군신 관계가 엄격히 지켜지던 유교 사회가 아니었는가. 고약해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어쩌면 죽음을 각오했을지 모를 일이다.

흔히 감언이설로 남의 환심을 사기는 쉽다. 고약해 역시 세종에게 듣기 좋은 달콤한 말만 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직언을 멈추지 않는다. 간관이라는 자신의 직분을 다하고자 악역을 선택하여 최선을 다할 뿐이다. 이처럼 개인의 안위보다 대의를 위해 직언하는 고약해 같은 신하가 곁에 있었기에 세종이 진정한 성군의 길로 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우리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교언영색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눈살이 찌푸려진다. 간사스러운 말을 절대 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줄 수 있는 인물, 600여년이 지난 이 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직업이 아닐까. 내 편, 네 편 구분 없이 오직 직언만을 고집했던 고약해와 올곧았던 그를 품은 세종의 넉넉함에 박수를 보낸다. 진심이 담긴 따가운 조언이 그리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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