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범의 시시콜콜한 이야기] 계절은 사랑으로 흐른다
[김영범의 시시콜콜한 이야기] 계절은 사랑으로 흐른다
  • 충청매일
  • 승인 2022.06.21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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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청주민예총 사무국장

지난겨울은 눈이 오지 않았다. 새벽을 틈타 내린 눈이 것대산 능선에 설산을 만들기도 했지만, 풍경은 오래가지 않았다. 눈이 오지 않는 겨울이 가는 동안 나는 봄을 그리워했다.

차갑던 공기가 따스해지면서 우암산 터널 옆 것대산 정상과 청주 시내 풍경이 내려다보이는 공원에 자주 갔다. 갈색의 잔디 사이로 푸른 새싹이 보인다. 목련 꽃눈이 여린 솜방망이 흔들며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목련, 개나리, 진달래, 산수유, 생강나무, 갯버들이 4월이 오기 전 꽃을 피웠다. 들판에는 꽃다지와 양지꽃과 냉이와 봄맞이꽃과 민들레, 제비꽃이 앞다투어 피기 시작한다. 숨죽이며 때를 기다린 봄의 정령이 언 땅을 녹이고 마른 나무에 물을 길어 올리고 있었다.

4월 벚꽃이 만발하면, 지천으로 꽃들이 피어난다. 산에는 아카시아 향기를 담으려 벌들이 날아들고 찔레꽃향에 취한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장미의 계절 5월이다.

노란 금계국과 빨간 장미 터널이 유명한 낙가천을 산책하다 보면 계절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어제와 오늘의 풍경이 다르고 어제 보지 못했던 꽃들이 피어난다. 모과, 꽃양귀비, 자운영, 수레국화, 패랭이, 엉겅퀴 그리고 벌노랑이까지 참 많은 꽃이 핀다. 산의 빛깔이 짙어지고 밤꽃이 피기 시작하면 여름이다.

계절을 월별로 정확히 나눌 수 없듯이 언제부터 봄이고 언제부터 여름인지 알 수 없다. 다만, 밤꽃이 피고 대추나무 꽃이 수줍게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면 낙가천에도 달뿌리풀이 키만큼 자라고 개망초가 지천으로 피기 시작한다. 여름이다.

봄의 꽃들이 내준 자리에 개망초가 눈처럼 피어난다. 민들레 새하얀 씨앗이 날린다. 겨울을 건너온 봄이 씨앗을 맺는 동안 차례를 기다린 여름이 꽃을 피운다. 한 계절이 한 계절을 기다리고 한 계절이 한 계절에게 자리를 내어주어야 우리의 계절은 온전히 만날 수 있다. 저마다 꽃 피는 시기가 다르고 기다릴 줄 안다. 먼저 피려고 싸우지 않으며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는다. 계절은 그렇게 흐른다.

모든 꽃이 한꺼번에 핀다면 벌들은 얼마나 힘들까. 앞다투어 세상 모든 꽃이 핀다면 튼실한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모든 꽃이 한꺼번에 피고 진다면 우리는 꽃 진 자리를 어떻게 견딜 것인가.

봄도 그냥 오지는 않았다. 겨울이 겨울을 견뎌주었기 때문이다. 겨울이 겨울의 자리를 기꺼이 봄에게 내어주었기 때문이다. 겨울이 봄을 사랑으로 맞아주었기 때문이다. 겨울이 봄에게, 봄이 여름에게 온 마음을 다해 사랑을 속삭였기 때문에 우리의 계절이 흐르는 것이다.

나는 어느 계절을 지나고 있을까?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계절을 보내주며 살고 있을까? 나의 계절을 너에게 내어준 적 있던가?

우리는 자연의 순리를 역행하며 살아간다. 젊은 날은 꽃을 사랑하지 않으며 계절은 춥고 덥고 선선하다와 같이 감각에 맞춰 느낄 뿐이다. 지루한 장마가 오거나 한파가 찾아오면 여름이거나, 겨울이거나 투정 부릴 뿐이다.

능소화가 피었다. 머지않아 채송화도 봉숭아도 필 것이다. 여름은 여름의 순리대로 살 것이고 아무렇지 않게 가을에게 말할 것이다.

가을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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