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제 잘난 맛에 산다는 말이 있다. 이 말에 자유로운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내가 잘났다는 착각이 있어야 자신감도 뿜뿜 솟는다.

착각은 활력이다. 망상이라면 곤란하지만 착각은 생활의 윤활유가 되기도 한다. 나 자신에 대해 정확하게 아는 대로만 산다면 세상살이가 얼마나 심드렁하겠는가.

벌써 오래전 일이다. 동호회 모임이 끝나 모두 헤어진 후였다. 행사를 준비하느라 피로를 느끼며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그날 참석했던 회원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행사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안전하게 귀가를 잘하시라는 등, 지극히 의례적인 인사일 뿐이었다.

문자에 대한 답을 보낸 사람 중 유독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답글은 매끄럽지 않은 문장이지만 진심 어린 감사의 마음이 엿보였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다음 모임에서였다.

그는 유독 외모에 신경을 쓰고 나왔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전과 다르게 2대 8로 가르마를 타서 단정하게 무스를 바른 것이며 화려한 야자수 무늬의 새 셔츠가 왠지 그에게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와인색 팬츠도 그에게서는 어색하게 튀었다.

멀찌감치 앉아서 자꾸 내게로 눈길을 주는 모습이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특별히 할 말이 있을 일도 없다. 왜 저러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혹시 내게 호감이라도? 말도 안 될 일이다.

황당한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다음 모임에는 싱싱한 두릅 두 상자를 갖고 왔는데 한 상자는 회원 전체를 위한 것이었고 하나는 내게 전하는 것이었다.

이걸 받아도 되나? 이상했지만 다른 회원들은 뭐 어떠냐며 그냥 받으란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그의 존재는 점점 부담으로 다가왔다.

왜 그럴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일이었다. 내가 그에게 특별히 관심을 보인 것도 아니고 남달리 어떤 관계의 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와 소통한 것이라곤 지난번 모임에서 의례적인 문자를 보낸 것이 고작이다.

아마 그에게는 그 문자가 크게 다가왔던 모양이다. 소문을 듣기로는 농수산물 시장에서 경매를 하시는 분이란다. 억척스럽고 왁자한 시장 상인들과 함께 생활하다 보면 오가는 말들이 나긋나긋할 수 없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 안위를 물어주는 친절한 문자에 감동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목이 마른 이성계가 우물에서 물을 청했을 때 버들잎을 물바가지에 띄워 건넨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기듯이 말이다.

그의 착각이 부담스러워 더는 그 모임에 나가지 않았다. 이후에도 그를 만나보거나 소식을 들은 적도 없다. 다만 그때의 일이 떠오를 때마다 혼자 속앓이를 했을 그를 생각하면 미안하기도 하지만 그도 그 순간만큼은 일상에 활력을 얻었을지도 모를 일이라며 내 방식대로 해석해왔다.

그런데 가만, 여태껏 착각을 한 것은 오히려 내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드는 것은 어인 일인가.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