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영의 고전 산책] 여호모피(與狐謀皮), 서로 대립하여 이루어질 수 없다
[김치영의 고전 산책] 여호모피(與狐謀皮), 서로 대립하여 이루어질 수 없다
  • 충청매일
  • 승인 2022.06.19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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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가

 

 

 

기원전 509년 춘추시대, 노(魯)나라 정공(定公)이 군주에 올랐다. 이 무렵 노나라는 계씨 문중이 정권을 쥐고 군주 임명을 좌지우지하였다.

백성들은 군주가 누구인지 몰랐고 오로지 계씨가 나라의 주인으로 알았다. 하지만 계씨의 신하 양호가 세력을 키워 계씨의 우두머리를 가두자 계씨의 집권이 무너졌다. 정공이 이를 기회로 양호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다. 크게 상을 내리고 권력을 맡겼다.

이때 양호가 개혁의 기치를 들고 군주를 위협하는 노나라의 3대 집안인 맹손씨(孟孫氏), 숙손씨(叔孫氏), 계손씨(季孫氏)를 모두 멸하려 하였다.

이들은 모두가 이전 노나라 환공(桓公)의 아들이었으므로 삼환(三桓)이라 부른다. 하지만 이들이 연합하여 먼저 양호를 공격하였다. 양호는 불리하여 제나라로 달아났다.

그러자 정공이 신하 좌구명(左丘明)을 불러 물었다.

“양호가 쫓겨났으니 이대로라면 군주인 나도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일이다. 공자(孔子)가 정치를 안다고 하니 그를 등용하면 군주인 내가 마음이 편하겠다. 그러니 그대가 공자의 등용을 삼환과 논의하여 보라.”

이에 좌구명이 대답하였다.

“공자의 정치적 이상과 철학은 삼환과 크게 대립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그들은 결사반대할 것입니다. 공자는 권력을 나누고자 하고 삼환은 자신들만이 집권하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논의가 되겠습니까?”

좌구명은 이어 우화를 예로 들어 설명하였다.

“옛날 어느 주(周)나라 사람이 여우 가죽옷과 맛있는 음식을 좋아했습니다. 하루는 여우를 찾아가 천금의 가치가 있는 가죽옷을 만들려고 하니 호피를 제공해달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여우가 고개를 돌려 숲속으로 달아나고 말았습니다. 또 양들을 찾아가 맛있는 음식을 만들려고 하니 고기를 제공해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양들 역시 대답도 없이 재빨리 울창한 숲으로 숨어버렸습니다. 좋은 의도를 가지고 권유하였으나 주나라 사람은 이후로 10년 동안 가죽옷은 한 벌도 구경하지 못했고 양고기는 구하지도 못했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그것은 그가 의논할 대상을 잘못 찾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군주께서 공자를 등용하기 위해 삼환과 논의하라고 하신 것은 여우를 찾아가 그 가죽을 얻을 일을 의논하고 양을 찾아가 그 고기를 얻을 일을 의논하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정공은 좌구명의 말을 듣자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삼환에게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그래서 삼환과 의논하지도 않고 직권으로 공자를 재상에 임명했다. 공자에게 정치를 맡기면 군주의 권위가 살아날 것이라 정공은 생각했다. 하지만 공자가 정책 하나를 실행하고자 해도 삼환의 반대에 막히고 말았다. 게다가 정공이 술과 여자에 빠져 지내자 결국 공자가 물러나고 말았다. 이는 ‘태평어람’에 실린 고사이다.

여호모피(與狐謀皮)란 여우와 호피를 구할 일을 도모한다는 뜻이다. 요구하는 일이 상대방과 대립하여 도무지 이루어질 수 없음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그래서 양보하거나 희생할 생각이 없는 사람과는 헤어지는 것이 상책인 것이다.                                                    

  aion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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