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오송중학교 교감

얼마 전에 살아있는 개미를 손톱 속에 가두는 네일 아트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러시아의 네일 아티스트가 플라스틱을 이용해 개미를 넣은 후 투명 젤을 발라서 만든 작품이라며 SNS에 소개한 것이다. 개미가 손톱 안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으로 끝나는 영상이 공개된 후 생명 경시에 대한 비난이 거세게 쏟아진다. 이 사건은 개미들을 모두 풀어줬다는 아티스트의 해명으로 일단 마무리된다.

그 소식을 들으니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가 떠오른다. 인간이 개미의 언어를 터득하여 그들과 대화를 나눈다는 내용이 읽는 내내 경이롭고 독특하게 다가온 작품이다. 특히 개미처럼 작은 곤충도 인간을 관찰한다며 묘사한 부분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 세상의 중심은 절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런데 알고 보면 개미는 생태계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보물이다. 몸집은 아주 작지만 강한 턱을 이용해 나뭇잎도 쓱싹쓱싹 자르고 무거운 돌도 번쩍 들어 올리는 힘센 장사이다. 거기에 지구상에 있는 동물 사체의 절반 이상을 먹어 치우는 자연의 청소부이기도 하다. 또한 많은 양의 흙을 움직여서 생태계의 영양소를 순환시키는 등 자연에 공헌하는 바가 매우 크다.

이처럼 이로운 개미는 인간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 특히 근면함을 말할 때 자주 언급되는 곤충이다. 이솝 우화 ‘개미와 베짱이’에서 개미는 놀기만 하다가 음식을 구걸하는 베짱이의 게으름을 신랄하게 비난한다. 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우리도 어린 시절부터 근면함에 확실히 각인되는 과정을 밟는다. 어떤 상황에서든 게으름을 용서하지 않으며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 않다.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개미의 속성으로 협동정신을 들 수 있다. 개미는 여왕개미, 수개미, 병정개미, 일개미의 역할이 정확하게 분업화되어 움직인다. 이들은 맡은 일을 철저히 구분하면서도 동시에 페로몬으로 의사소통하며 협동해 나간다. 그리고 자신들보다 몇 배 큰 천적이 등장해도 일사불란하게 맞선다. 개미는 각자의 삶보다 집단의 삶을 우선시하고 희생에 있어서도 주저함이 없다.

그래서일까. 개미는 곤충들 중에서도 가장 조직화되어 있는 발전된 사회를 유지하고 있다. 이와 같은 개미 사회의 성공은 근면함을 바탕으로 한 협동정신과 희생정신이라는 강한 무기가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에도 개미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맡은 임무를 묵묵히 해 나가며 희생을 기꺼이 하는 사람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그런데 소외되고 힘없는 사람들을 얕잡아 부를 때 개미라고 일컫는다. 그러나 개미는 결코 가볍게 여길 존재가 아니다. 그들이 뭉치면 얼마나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지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돌이켜 보면 위기 때마다 개미와 같은 비밀 병기가 우리 사회를 지탱해 온 원동력이 아니었는가. 이들이 있기에 비록 현실에 부대끼지만, 세상이 살 만하다고 느끼며 행복한 미래를 꿈꿀 수 있다.

소설 ‘개미’에서도, 성경에서도, 논어에서도, 인디언의 속담에서도 우리에게 같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 “남이 너에게 행하기를 원치 않는 일을 남에게 행하지 말라.” 러시아의 네일 아티스트는 왜 이 진리를 몰랐을까. 큰 코 다치기 전에 긴장하라. 언제 개미의 반격이 시작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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