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편지 속에 담긴 고종의 진심

[충청매일 박승민 기자] 지난해 12월 말 충남 청양군 모덕사(면암 최익현선생 사당, 목면 송암리 소재) 고택에서 약 2만여점의 고문헌이 발견됐다.

청양군은 물론 충청권에서도 다량의 고문헌이 발견된 것은 매우 드문 일로 당시 학계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면암 최익현의 사상과 활동을 조명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현재 청양군은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과 함께 고택에서 발견된 고문헌, 춘추각(자료실), 대의관(유물전시관) 등의 유물을 기록화하는「모덕사 소장유물 기록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 기록화 작업 중 발견된 주요 유물로는 △면암 최익현선생 관련 기록류인 ‘면암선생문집’의 초고본 △지인 및 문인을 지역별로 기록한 명단인 ‘지구록’ △포천에서 청양으로 이거 한 이후 구동정사에서 문인들을 강학하며 작성한 강의록인 ‘구동정사강안’ △제주도와 흑산도 유배지에서 쓴 일기인 ‘탐적일기’, ‘흑산적행일기’ △선생이 작성한 간찰(편지)류 △중앙관직 및 신창 현감 재직 관련 관문서 및 필사문서 △실제 사용했던 민속유물 등이 확인됐다.

이 중 눈에 띄는 것은 고종(高宗)이 최익현선생에게 내린 ‘고종 밀유(高宗 密諭)’이다.

이는 1904년(광무 8) 6월 13일 고종이 최익현선생에게 비밀리에 내린 명령서로 ‘어지럽고 걱정스러움이 가득한 상황에서 경의 높은 덕망을 흠모한다. 짐이 장차 자리(관직)를 마련할 터이니 함께 위기를 구제하라’라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여기에서 ‘경의 높은 덕망을 흠모한다(慕卿宿德)’는 현재 최익현선생의 위패를 모신 ‘모덕사(慕德祠)’ 사우 이름의 모태가 됐다.

고종은 당시 나라를 위기에서 구제하고자 선생과 인척 관계인 최영년(崔永年)을 보내서라도 선생을 자신의 곁에 두고자 했다.

고종이 선생에게 밀유를 보낸 1904년은 선생의 나이 72세로 고종도 선생이 노쇠했다는 걸 알고 있었으나, 종사(宗社)와 강토(疆土)의 안위를 위해 선생에게 비밀리에 명령하게 된 것이다.

고종은 이후 7월 8일에 최익현선생을 왕의 자문에 응하는 궁내부 특진관, 7월 11일에 의안을 제출·토론하는 의정부 찬정에 임명했다.

해당 문서는 고종이 최익현선생에게 비밀리에 보낸 문서라는 점과 모덕사(慕德祠) 사우 이름의 모태라는 점에서 당시 최익현선생의 정치·사회적 위상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다.

청양군 관계자는 “앞으로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과 함께 모덕사 고문헌과 유물 전체에 대한 기록화를 지속적으로 추진, 완료하여 대중에게 공유할 수 있도록 체계화시킬 예정이다”라며 “기록화 과정 중 중요유물과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유물이 발견될 시에는 지금처럼 공개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또한「모덕사 소장유물 기록화 사업」은 현재 모덕사에서 추진하고 있는 선비충의문화관 조성사업의 면암기념관 전시콘텐츠에도 반영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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