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계절의 여왕 5월이다. 산과 들은 유록빛으로 산란하고 아름다운 꽃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사무실 화단에 활짝 핀 모란 한 포기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며칠 전부터 꽃봉오리에서 5월의 시그널이 들려오더니 마침내 꼬투리를 벙긋했다.

첫날에는 비밀스러운 임을 만나듯 수줍게 한 떨기만 피우더니 다음날에는 고운임 만난듯이 발그레한 얼굴로 가지 끝동마다 꽃 빛을 안겨주었다.

이삼일이 지나자 7년이 넘은 나무에서 수십 송이의 연분홍 꽃봉오리가 한꺼번에 벙글었다.

풍성한 엄마의 치맛자락 같은 모란꽃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함지박만 해지면서 웃음꽃도 함지박만 해진다. 그래서 함박꽃이라고도 했는가,

천의 얼굴을 갖은 이 꽃은 시골의 순박함과 도시적 화려함을 동시에 지녔다.

보드라운 꽃잎에서는 공덕을 느낀다. 어머니가 태반에 태아를 고이 감싸고 있는 숭고하고 고귀한 감촉이다. 5월에 피어나는 이유가 어머니의 마음, 어린이의 마음, 부처의 마음, 스승의 마음을 모두 담고 있기 때문일까,

마음을 채우고 싶은 날에 모란 앞에 서면 꽃이 탐스러워 온통 내 것 같으니 외려 욕심이 사라진다. 삶의 속도와 방향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날에도 모란 앞에 서면 마음의 상념과 복잡함이 사라진다. 엄마의 품처럼 저절로 안기게 되는 이 꽃은 나의 모든 감정을 사랑하고 모두에게 감사하게 한다.

모란의 향기는 은은하다. 목련꽃 향은 꿀벌들이 좋아하는 향기가 없을 뿐, 장미 향과 비슷한 향기는 분명히 있다.

그런데도 향기가 없다고 하는 까닭은 꽃에 눈이 멀어 환취(幻聚) 현상을 겪기 때문일 것이다. 꽃의 온화한 향기에 취하다 보면 모든 번뇌를 지우고 행복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

강렬함으로 마음을 끌어당기는 꽃송이는 흩뿌리는 바람에도 수문장처럼 끄덕이지 않는다. 이 꼿꼿함을 보며 쉼도 없고 끝도 없는 인생길에서 부딪히는 고달픔과 외로움을 위로받는다.

모란은 또한 그리움의 정서가 스며있다.

그리움을 함빡 머금고 있다가 절박함을 견디다가 못해 터트리는 활화산이다.

며칠이 지나도 그 뜨거움은 쉬 가시지 않아 진화하기가 어렵다. 그런데도 빛과 어둠을 흡수하는 초연함과 평온함이 나의 정서와 잘 맞는다.

모란꽃에도 전설이 있다.

전쟁 통에도 공주만을 그리워하던 왕자는 죽어 모란꽃이 되고, 기도하는 모습으로 공주도 숨이 끊어지니 공주의 정성에 감동한 신들은 공주를 모란꽃 옆에서 탐스러운 작약으로 피어나게 했다.

5월 중에 모란이 피고 나면 으레 작약이 뒤따라 피게 되었으며, 모란은 은은한 향을, 작약은 공주의 향을 닮아서 진하게 내 뿜는다는 전설은 허구일지언정 실체라고 믿고 싶어 진다.

서양의 꽃이 장미라면 동양의 꽃은 모란이다.

진홍색으로 연분홍색으로 순백색으로 부귀영화의 다채로움을 발산하는 이 꽃은 꽃으로 한 번 피고 마음에서 두 번 피고 글로써 세 번 핀다.

나 또한 5월의 어느 변방에서 한 떨기 모란꽃으로 피어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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