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청주예총 부회장

50여 년 전, 강원도 험준한 산길을 버스 하나가 가고 있었다. ‘부르릉!’ 버스가 힘겨운 듯 소리를 내며 가파른 고갯길에 접어들려고 할 즈음, “운전수 양반 잠깐!”이라는 고함소리가 버스를 멈추게 한다. 나이가 지긋한 노스님이었다. “아니 스님! 아직 갈 길이 멀었는데요?!”라며 젊은 시자가 의아해 한다. “잔소리 말고 내리라면 내리라니까!”라며 스님이 호통을 친다.

차에서 내린 둘은 산골의 민가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야 이놈아 경치가 얼마나 좋으냐!” 이튿날 버스를 타려고 할 때, 어제 그 버스가 고개를 넘다가 추락하여 많은 사상자가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스님! 사고 날 줄 아셨으면 어제 말씀을 하셨어야지요!” 라고 항의를 하니, “야 이놈아! 내말을 누가 믿겠나? 날 미친놈만 취급할 것이 아닌가!”

이것은 바로 탄허(呑虛)스님의 유명한 일화다.

그는 10여년 연장자였던 양주동과 함석헌이 배울 만큼 유·불·선과 주역·정역·성경까지 통달해 동서고금의 지혜를 꿰뚫었던 인물이다. 주역은 500번이나 읽었으며, 성경도 통째로 외움으로써 불교와 기독교를 회통(會通)시켰다. 그는 한국전쟁과 울진·삼척 무장간첩 침투, 박정희 시해, 자신의 임종일 등을 정확히 예견하여 맞췄다고 한다.

원래 불가(佛家)에선 무당들과 같이 점을 치거나 예언하는 것은 혹세무민(惑世誣民)한다고 하여 금기(禁忌)로 되어 있다. 그러나 그는 견해를 달리 하였다. 즉 “나는 노스트라다무스와 같은 예언가가 아니다. 나는 역학적 원리와 선정(禪定) 상태에서 미래를 예견하는 것이다. 성현이란 미래를 예견함으로써 대중이 나갈 바를 제시할 임무가 있다”라고 역설했다.

예지(叡智)는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절언절려(絶言絶慮)’, 즉 말과 생각이 끊어진 경지에 이르면, 일체의 집착과 애욕과 번뇌와 망상은 사라지고 무상삼매(無相三昧)에 도달한다. 우주와 내가 하나가 되고, 시간과 공간 개념이 사라진 진공(眞空)이 되면, 거기에서 묘유(妙有)가 나온다. 그래서 ‘진공묘유’라고 한다. ‘명경지수(明鏡止水)’에 비유된다.

탄허는 한국은 역학적으로 간방(艮方)으로서 ‘청년의 나라!’라며 ‘희망의 미래’를 제시했다. ‘오래지 않아 우리나라에는 위대한 인물들이 나와서 분단된 조국을 통일하고 평화로운 국가를 건설할 것이며, 우리나라의 새로운 문화는 지구촌의 귀감이 되어 전 세계로 전파될 것이며, 세계문화의 중심지이 될 것이다’라고 기회 있을 때마다 역설했다.

얼마 전 브라질 상파울루 대공원에서는 포르투칼 언어를 쓰는 브라질 젊은이 들이 한국어로 ‘떼창’을 불러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오늘날 지구촌을 휩쓸고 있는 한류문화! 40년 전 탄허의 예언이 현실화되고 있다.

오월은 ‘청소년의 달’이다. 청소년은 우리의 희망이요 미래요 주춧돌이다. 청소년을 건전히 육성하는 것은 ‘우리의 주춧돌’을 다지는 길이다. 탄허가 역설한 대한민국 ‘청년의 나라’를 주목하여 우리의 주춧돌을 다져야 한다.

‘청년의 나라’ 대한민국을 통하여, 우리의 청소년을 건전히 육성하고, 대한민국을 세계문화의 중심으로 장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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