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테라피 강사

연일 신고가를 넘나드는 명품 쇼핑에 사람들이 열광한다. 명품이 어찌 생겼기에 그리도 사람들을 얽어맬까 싶어 있는 돈에 없는 돈까지 긁어모았다. 소위 명품이란 걸 사기 위해 유명 백화점의 오픈런닝이란 달리기에 참여도 했다.

어렵사리 그 명품백이라는 물건을 구입해서 들고 다녀 보았다. 무겁다. 단단해 보이고 가죽이 좋아보일 뿐 들고 다니기에는 무겁고 보관이 신경 쓰이는 한 종류의 가방일 뿐, 전에 들던 가방들보다 성가시지만 특별하달 게 없다. 들어보고 나서야 알게 되는 비싼 가방의 가성비는 낮다. 이런 자본주의에 나는 번번이 말려든다.  

다른 방식의 명품을 이야기하는 그림책이 있다. 제인 고드인이 글을 쓰고 안나 워커가 그림을 그린 ‘세상에서 둘도 없는 반짝이 신발’이다.

주인공은 라라이다. 라라는 여자아이이지만 늘 오빠들 옷을 물려받아 입는다. 옷은 큰오빠 윌터가 입다가 맥스에게, 맥스오빠가 입다가 핀 오빠가 물려받아 입는다. 맨 나중에 라라에게 올 때는 많이 낡은 상태로 온다. 라라가 물려받지 않는 것은 속옷과 신발뿐이다. 라라는 신발을 좋아한다. 신발은 새것을 신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라라는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신발인 반짝이 신발을 갖게 된다. 엄마는 항상 오래 신으라고 발보다 좀 큰 신발을 사준다. 라라는 어디를 가든 새 신발을 신고 다닌다. 오빠들이 시냇물을 따라 모험을 떠나자 라라도 따라나선다. 반짝이 신발을 신은 채로. 모험은 즐거웠다.

전에 살던 집 근처 바닷가에서 주웠는데 한 짝뿐이니 버리라고 엄마가 말했지만 엘리는 그 신발을 계속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둘은 침대 위에 신발을 나란히 올려놓는다. 엘리가 신발을 돌려줄까라고 묻지만, 라라는 신발이 너에게도 맞느냐고 되묻는다. 그날 이후로 라라와 엘리는 세상에 둘도 없는 반짝이 신발을 어떤 때는 라라가 어떤 때는 엘리가 때론 둘이서 같이 신기도 한다.

아무런 쓸모가 없었던 신발이 한 아이의 소박하고 간절함에 또 다른 한 짝과 둘도 없이 소중한 친구를 연결해 준다. 눈에 보이는 결말이지만 두 아이에게 박수를 반짝반짝 쳐주고 싶다. 정들고 아끼게 된 물건을 통해 다른 이와 더 가까워지는 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나도 외할아버지의 사랑이 담긴 슬리퍼가 있다. 뒤꿈치에 빨간색 봉숭아꽃이 새겨져 있는 분홍색 고무 슬리퍼다.

어린 날 외할아버지 손을 꼭 잡고 덜커덩거리는 소달구지를 타고 읍내 장터 신발 점방에서 내 가슴에 안겼던 슬리퍼이다. 어디든 신고 다니던 신발은 서운하게도 장맛비에 떠내려갔다. 당시 촌에서는 보기 힘들던 마음에 쏙 든 분홍색 슬리퍼는 아직도 가슴 깊숙이 선명하다.

세상에 하나뿐인, 억만금을 주어도 살 수 없는 영원한 명품이 되었다. 나는 어리고 장맛비는 엄청나서 신발을 찾을 엄두를 내지 못한 안타까움까지 마음에 남았다. 그 기억 때문일까, 지금도 깊은 냇물은 공포스럽다.

어떤 신발도 어린 날의 분홍슬리퍼처럼 그리웁고 애틋할 수도 없다. 진짜 명품은 어쩌면 어린 날 잃어버린 신발처럼 단순한 물건이 아닌 것, 오래 가슴에 남아 시간의 이야기들을 오래오래 풍요하도록 반짝이는 것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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