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디제라티 연구소장

오월은 가정에 행복의 샘터가 솟는 달이며, 봄을 완전히 벗어나 자연의 푸르름이 상긋한 나들이에 적합한 계절이다. 그동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얼어붙었던 상황이 방역조치가 완화되자 거리마다 생동감과 움추렸던 각종 축제가 기지개를 켜고 있어 사람 사는 세상 같다.

코로나 긴장 상황에서 가장 아픔이 컷던 일은 국가의 시책을 준수하여 사랑하는 이들을 다시 못 올 길로 떠나 보냄에 있어 최대한의 도리와 예의를 다하지 못함이다. 비록 불가피한 사정이라해도 이러한 트라우마(Trauma)를 어떻게 치유할지 세월에 맡길 수 밖에 없어 보인다.

이제 다시는 전염병 감염을 우려해 세상을 떠나는 이들의 마지막 보살핌은 물론 예(禮)를 저버리는 불행한 일이 없었으면 한다. 필자는 지난해에 어머님을 잃고 1년 만에 장모님을 하늘나라로 훨훨 보내드리는 애사(哀事)를 연이어 겪었다. 

두 분 모두 코로나 통제 상황에 임종을 지키지 못한 불효를 하여 마음 한 구석이 편치 못하다. 태어날 때는 여러 사람들의 축복 속에 태어났지만 이승의 인연을 쓸쓸히 홀로 맞는 현실이 야속하기도 하지만 차츰 이러한 문화로 변해가는 것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이러한 시대적 추세에서 우리는 상속법상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있다. 앞으로는 생명보험을 비롯하여 보험제도가 이를 보상하겠지만 현재 80대 이상 어르신들의 경우 보험 적용이 되는 분들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상속법상의 재산 분할 보다는 누가 부모를 더 봉양했느냐와 제사 봉사(奉祀)에 따른 분배 기준이 재정비 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람의 본능은 속다르고 겉다르며 가지면 더 가질수록 욕심이 생겨나다보니 본의 아니게 다른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특히 요즈음 여성의 권익과 평등이 강조되면서 아들보다는 딸이 즉 사위가 본인의 부모보다 처가 쪽 부모를 모시는 사례가 늘고 있다. 상당히 좋은 현상이면서도 재산 분할이나 보상에 있어서는 아직도 출가외인이라하여 불공평한 봉건적인 처리로 자칫 가정 불화의 단초(端初)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어느 쪽 부모든 모시는 쪽에 가식적인 말보다는 헌신에 대한 실제적인 경제적 보상이 이루어져야 하며 필요시 계약 등법적 자료를 사전에 준비하는 것이 안전하다.

제사는 물론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추모의 의미이지만 후손들의 배려라고 본다. 지금은 경제적으로 풍요하니까 제사음식에 대한 의미가 크지 않지만 어려웠던 시절은 유일하게 영양을 보충할 수 있는 날이 제삿날이기 때문이다. 또한 같은 성씨들로 촌락을 이룬 마을 공동체의 협동심과 구심점이 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사상 유례없는 코로나 상황에서는 인터넷과 유튜브로 성묘와 제사를 지내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와 같은 전시나 특별 상황이 아닌 경우는 제외하고 이 해괴망측 문화는 다시 발생하지 않았으면 한다. 

제사는 이미 세상을 떠난 이를 애도하는 일이지만 조상신이라는 집안의 정신적 지주를 위한 기도의 뜻이 담겨 있다. 가정의 달을 맞아 상례와 제사를 흉례(凶禮)가 아닌 길례(吉禮)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흐트러진 마음을 가다듬고 가족의 우애를 다지는 좋은 만남을 가지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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