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꿈세상 정철어학원 대표

현대를 사는 우리의 삶! 그 삶은 행복할까? 행여 행복하지 않아서 그 행복을 찾으려 발버둥 치는 삶은 아닌가? 요즘, 주위를 놀라게 하는 삶의 선택을 하는 사람을 종종 본다. 그리 보면 사람들이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것도 같다. 행복의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우리는 어둠의 그림자 속에 놓여 있는 것 같다. 행복의 밝은 시간은 짧고 어둠의 시간은 길어 보인다. 훌륭한 삶을 산 성현들도 불행의 고통에 번민했음을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주위에는 자연인을 다루는 방송 프로그램을 고정적으로 시청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언제인가부터 자연인 프로그램을 자주 시청하더니 이젠 나도 자연인이 되는 삶을 그려보기도 한다.

그 프로그램에 소개되는 자연인들 대부분은 사회 속에서 꽤 왕성하게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이다. 그러던 그들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스트레스를 피해 건강과 행복을 찾아 깊은 산속 자연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그들은 사회 속에서 사람들과 어우러져 스트레스를 풀고 사람들로부터 행복을 나누어 받고 또 나누어 주며 행복한 미소를 머금고 살고 싶었으리라 싶다. 절실히…. 그러다 너무 절실하여 자연인이 되었지 싶다.

1만2천여년 전 농업혁명을 계기로 인류문명이 시작되었고 이에 따라 잉여농산물이 증가하고 인류가 풍요로워지고 행복해졌다고 많은 역사가가 말한다. 과연 그로 인해 인류가 그렇게 행복하게 되었을까?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말한다. 농업혁명 이후 농부들은 수렵채취인들보다 더 힘들고 불만스럽게 살았다고 한다. 농사를 짓고부터는 새벽부터 밤까지 종일 노동에 시달렸다. 인간이 농산물을 키우는 게 아니고 농산물이 성장하기 위해 사람을 길들인 것 같다고도 한다. 즉 평균적인 농부는 수렵채취인보다 더 열심히 일했으며 그 대가로는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고 말한다. 동물 가축화로 새로운 질병이 발생하고 인수공통전염병도 생겨났다. 집단 간 개인 간 갈등과 알력도 심화하였다. 집단사회 생활이 시작되고 그 속에서 잉여 식량의 불평등으로 일하지 않는 계층이 생기고, 권력, 소유, 지배, 다툼이 심화하였다고 말한다. 더 큰 불행의 시작이다.

유발 하라리 말대로, 인간이 마치 동물의 무리처럼 동족들과 결합하여 일종의 자유로운 협동을 통하여 최소한 결합하던, 아무도 구속하지 않으며, 그것을 만들어낸 일시적인 욕구가 존재하고 있는 동안에만 협동하던 수렵 채취 시대의 수렵채취인들이 농업혁명 이후의 농부들보다 더 자연스럽고 더 행복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된다.

인간은 행복을 추구한다. 행복은 무엇인가? 인간은 물질적 풍요, 권력, 명예를 끊임없이 추구한다. 그 물질적 풍요, 권력, 명예가 행복의 원천인가?

‘쌀 99섬 가진 자가 1섬 가진 사람 것을 탐낸다’는 옛말처럼 사람은 평생을 물욕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소위 권력 있는 사람도 많은 권력 쟁취를 위해 불 물을 안 가리며 아귀다툼으로 싸움질한다. 이를 보면 유발 하라리의 척도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행복은 마음속에 있다. 힘이 있는 자는 권력 쟁취 보다 사람끼리의 행복이 우선임을 잊지 말아야 하고, 물질적 풍요도 이웃과 행복으로 나눌 때 비로소 그 가치가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의 본능은 조금 더 갖고 싶고, 조금 더 오르고 싶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의 마음은, 다른 사람의 기쁨과 아픔은 안중에 없다. 그러다 보니 모두가 아프다. 집단사회에서 행복과 사랑은 ‘나 아닌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마음’이 모여 이룰 수 있다. 자연인은 이런 이룸이 너무 그리워 자연인이 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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