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

 

[충청매일] 우리 사회는 다양한 계층이 존재했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 쓰는 특수한 용어가 있습니다. 예컨대 왕실의 경우 자신들만이 쓰는 독특한 용어가 있습니다. 임금의 얼굴은 용안, 임금의 옷은 용포, 임금의 밥은 수라…. 이런 식입니다. 그러면 이런 용어가 존칭이라고 해서 밥, 옷, 얼굴 같은 말이 비칭이 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건 그들의 특수용어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용어를 우리가 친구들에게 적용하여 쓰면 되나요. “야, 네 용안에 고추장 묻었다.”고 쓸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그렇게 쓰는 건 틀린 용례입니다.

이와 같이 술을 어른에게 쓸 때 약주라고 한다면, 이 약주라는 말을 친구 사이에 쓸 수 있나요. 예컨대, 친구와 술을 마시는데, “야, 약주 한 잔 해!”라고 말하는 것이 제대로 된 용례가 되느냐는 말입니다. 정말 웃기는 일 아닙니까. 더욱 놀라운 것은 전문가인 국어학자들이 이걸 구별하지 못하고 사전에다가 버젓이 이런 말을 쓴다는 것입니다.

이빨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빨은 그냥 평범한 말이지 낮춤말이 아닙니다. 이빨에 대한 경어가 치아라고 한다면, 그래서 어른에게만 써야 하는 말이라면, 자기 이빨을 가리키며 ‘치아’라고 한다는 것은 정말 웃기는 일입니다. 자기 스스로 자기 이빨을 높이는 일이니 이런 우스꽝스러운 행태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 예컨대 어른에게 “치아에 고춧가루가 끼었습니다.”라고 말을 하는 것은 맞는 일이지만, “밥을 먹었으니 치아를 닦으러 가야겠다.”라고 한다면 정말 웃기는 일이고, 자신에게 존칭을 쓰는 꼴갑을 떠는 것입니다.

이런 전후맥락을 모르고서 사전에 버젓이 ‘이’를 낮잡아 부르는 말이라고 써놨으니, 도대체 이 놈들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입니까. 무식을 글로 자랑하는 손모가지를 작신 부러뜨리고, 함부로 놀리는 아가리를 찢어놓고 싶습니다.

이빨은 이를 낮잡아부르는 말이 아닙니다. 이가 나란히 선 모양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발>은 나란히 선 것을 가리키는 순 우리말입니다. 중국집 입구에 길게 드리운 것도 ‘발’이고, <서릿발>도 비숫한 뾰족한 얼음이 땅밑에서 솟아오른 것입니다. 글발, 말발이 모두 그렇게 나란히 늘어선 것을 가리키는 말들입니다.(‘글발’은 비읍순경음화를 거쳐서, ‘글월’로 자리잡았습니다.)

이는 하나로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러 개가 나란히 서서 ‘발’을 이룹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싸잡아서 말할 때 <이+발>이라고 한 것이고, 이것이 이빨로 자리잡은 것입니다. 이게 왜 ‘이’의 낮춤말이라는 말입니까. 오히려, ‘이’의 복수형이라고 설명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런식으로 순 우리말을 대부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사전에서는 설명합니다. 결국 우리말의 씨를 말리고 한자나 영어로 대체하려는 짓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까지 듭니다. 예컨대 언청이란 말이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네이버국어사전에는 설명했습니다.

그러면 높이는 말은 뭔가요. 한자말이겠죠. 언청이가 왜 낮잡아이르는 말이란 말인가요. 우리는 시골에서 자랄 때 윗입술이 찢어져서 잇몸이 드러난 사람을 언청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를 비난하거나 골리려는 뜻은 없었습니다. 그것은 그렇게 생긴 사람을 가리키는 그냥 우리말일 뿐입니다. 이런 걸 낮잡아이르는 말이라고 설명을 해놓는 자들을 어떻게 국어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빨이라는 말은, 우리말을 버려서 자신의 품격을 높이려는 한국인들의 허영끼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말입니다. 이 허영끼야말로 우리말의 싹을 죽이는 독약입니다. 이빨로 제 허영기를 만족시키려는 세상 모든 놈은 혼나도 쌉니다. 이가 여러 개 나란히 있으면 그게 이빨인 겁니다.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은 분들이 어찌 이걸 모르신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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