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대 칼럼] 낙화
[이종대 칼럼] 낙화
  • 충청매일
  • 승인 2022.04.21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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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4월도 하순. 온 천지를 아름답게 수놓던 봄꽃도 피었다간 그예 지고 말았다. 봄에 피어나는 꽃은 보는 우리를 설레게 한다.

지난 겨울 모진 추위를 견디고 기품 있는 꽃망울을 터뜨리던 매화에 이어서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살구꽃, 벚꽃, 철쭉, 목련이 다투어 피어났다. 피어나는 꽃은 기쁨을 준다. 매화는 매화대로 산수유나 개나리는 제각각 그 꽃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마음껏 보여준다. 나는 간혹 내세가 있다면 천국은 꽃이 가득한 곳일 게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렇게 천상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봄꽃들도 이젠 언제 그랬냐는 듯 이어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꽃은 사라져도 우리 곁에 꽃이 있었다는 기억만으로도 행복하다. 나는 오래 전 두번째 시집에서 꽃에 대한 기억을 형상화한 적이 있다.

 

기억해 줄 사람이 있다면 / 아주 떠난 건 아닌 게다 / 지금은 뿌리째 뽑혀 흔적조차 없는 /

한 떨기 들꽃일지언정 / 가슴에 떨어진 꽃잎 묻고 살아가는 / 오직 한 사람 있다면 떠난 건 아니다 / 아주 떠나버린 건 아닌 게다 / 살아생전 귓불을 간질이던 산들바람 / 깔깔 웃어대던 작은 입술과 / 연분홍 꽃 네 볼이 여전히 정겨움으로 남아 / 진달래 지천으로 피던 산자락보다 더 넓은 / 가슴 한 구석 동그마니 남아 지었다가 피고 / 다시 지곤 한다면 / 살아 있는 보람보다 더한 / 사랑으로 남아 있는 게다 / 기억해 줄 사람이 있다면 / 떠난 게 아니다 / 곁에서 손잡고 부추겨주는 사랑으로 남아 있는 게다 / 기억해 주기만 할 양이면//

졸시 <꽃잎으로> 제2시집 『뒤로걷기』 全文

 

얼마 전 나는 벚꽃을 다시 보기 위해 청주 무심천 제방 도로를 천천히 달린 적이 있다. 바로 며칠 전에는 청주 대교를 자동차로 스치듯 지나는 바람에 벚꽃의 아름다운 행렬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기 때문이었다.

그 사이 한 차례 비도 왔기에 설마 하는 마음으로 내 마음 속에 남아 있는 벚꽃 길을 향해 달렸던 것이다. 그런데 제방에 늘어서서 환하게 세상을 밝혀야할 벚꽃은 이미 지고 있었다.

아쉬웠다. 세상을 환하게 밝힐 듯 하던 그 아름답고 빛나던 꽃잎은 별로 남아 있지 않았고 제방 도로엔 바람에 날리다 여기저기 떨어진 작고 하얀 벚꽃 잎이 드문드문 보일 뿐이었다. 좀더 일찍 서둘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하며 집을 향해 차를 몰았다.

그런데 내 마음 속엔 스치듯 지날 때 언뜻 눈에 들어왔던 벚꽃의 아름다운 행렬이 가득 차 있었다. ‘그렇구나! 꽃은 졌어도 진 게 아니구나!’ 싶었다. 꽃은 그렇게 시각적 이미지를 중심으로 가슴에 남는가 보다 싶었다.

신록의 계절에도 낙엽 지는 때에도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꽃에 대한 기억은 꽃에 대한 그리움이고,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에너지 원천이지 않을까 싶다.

벚꽃처럼 이름 있고 기품 있는 꽃만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비록 들판에 피어난 이름 없는 들꽃일지라도 기억해 주는 것만으로도 꽃은 존재 가치가 있다. 들판에서 피어나는 한 송이 들꽃일지언정 그 꽃을 가슴에 묻고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들꽃은 꽃으로서의 역할을 이미 다 한 것이다. 꽃의 삶도 사람의 삶과 다름이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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