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네비를 어디로 찍어야 하지요?’

‘OO행복센터.’

서로 바쁜 우리는 문자로 간단히 주고받았다. 며칠 전 지인으로부터 퇴비를 가져가라는 연락을 받은 터였다. 농업인인 그는 정부에서 받은 퇴비 두어 포대를 초보 농군인 내게 나누어주겠단다. 고마운 마음에 덥석 대답부터 해버렸다. 틈새 시간에 얼른 다녀오려 네비를 찍었다.

‘OO행복’까지만 치면 검색 결과가 없다고 뜬다. 여러 번 시도를 해봤지만 허사다. 휴대폰 앱으로 검색해도 보이지 않는다. ‘그럴 리가….’

뒤로 또 다른 약속이 있어 얼른 다녀와야 하는데 마음이 조급하다. 퇴비를 가져가라고 했으니 아마 OO읍사무소로 가면 될 듯 싶었다. 별관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나 OO읍사무소 별관을 검색했다. 금세 확인은 되었지만 네비를 잘못 본 탓에 근처에서 뱅글뱅글 돌다가 겨우 찾아갔다.

반가운 마음에 쪼르르 가까이 갔다. 무언가 가득 쌓여있는데 내가 가져가야 하는 퇴비는 없다. 마침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있어 물어봤더니 내가 가져갈 것이 아니란다.

지인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내가 가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니라 OO행복센터 창고 앞이란다. 별관이 아니라 창고였다니…. 그는 관공서인 그곳을 잘못 찾아간 나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답답해하는 눈치다.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포기하고 다시 돌아오는 길이다.

무엇이 잘못됐을까? 내가 워낙 길눈이 어둡기는 하지만 네비에도 나오지 않는 것을 어떻게 하란 말인가. 답답하다는 듯 상기된 그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답답한 건 오히려 나인데 말이다.

OO행복센터, OO행복센터…. 몇 번을 되뇌다 가까스로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OO행.정.복.지.센터’.

그런가? 다시 검색을 했더니 버젓이 나온다. 행정복지센터라는 말이 익숙지 않아 벌어진 일이다. 지인은 줄여서 알려주었고 나는 그대로 받아 검색을 했으니 나올 리가 없다. 행정복지센터라는 말을 알아듣지 못한 내 탓이었다. 언제부턴가 동사무소를 겨우 주민센터로 익혔는데 이제 다시 행정복지센터라니 헛웃음이 나온다. 복지라는 말이 내겐 왜 그리 생소한지….

지난번 아들이 왔다가 서울로 돌아가면서 ‘잘 도착했어요. 고터예요’하는 문자에 며칠 수수께끼를 풀어야 했다. ‘고터라니 거기가 어디길래 아들은 거기까지 왜 갔을까’ 이삼일을 생각하다 물었더니 고속 터미널이란다. 이런…. 나만 소통의 사각지대에 있었다니 어이가 없다. 말을 줄여 쓰는 사람들이 야속하다. 내가 쓸 땐 재미있는데 끔벅끔벅하며 금세 알아듣지 못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뒷방 늙은이가 된 기분이다.

국어 아닌 우리말을 다시 공부해야 할 판이다. 아니 어쩌면 줄여서 쓰는 은어를 표준어로 삼자고 하는 날이 오지는 않을까 두렵다. 심지어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에게조차 소통을 위해 은어를 가르쳐야 하니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것 아닌가. 세종대왕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건 아니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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