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오송중학교 교감

[충청매일] 한 달여 전에 이어령 선생이 작고하셨다. 선생은 시대를 꿰뚫는 날카로운 시선과 통찰력으로 문단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며 문학평론가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1988년에는 서울올림픽의 개·폐회식을 세계적인 이벤트로 만든 문화기획자로서의 면모를 보였고, 초대 문화부 장관을 역임하는 등 다양한 이력을 자랑한다. 또한 여러 신문사의 논설위원으로 활동하여 우리 시대의 논객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인지 선생의 서거 소식에 많은 이들이 안타까움을 전하며 생전에 남긴 업적과 발자취에 관심이 쏠렸다. 요즘 서점가에서는 예전에 출간한 선생의 책들이 역주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 역시 몇 권의 책을 통해 공감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우리 문화 박물지’라는 책을 다시 만났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놓은 생활용품 63가지를 때론 날카롭게, 때론 따뜻하게 특유의 언어로 풀어내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또한 익숙한 사물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잠들어 있던 생각을 깨워주기에 충분하다.

얼마 전에 한국 드라마의 인기로 미국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한국전통모자’, 즉 ‘갓’이 검색어로 자주 등장하면서 인기리에 판매된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낡은 유물 정도로 인식되던 물건이 해외에서는 오히려 각광받는다는 사실이 이채롭게 느껴졌다. 지금껏 한국 문화와 디자인이 지닌 뛰어난 가치를 그냥 지나친 것은 아닐까. 우리는 생산성이나 효율성만 따지면서 앞만 보고 달린 듯하다. 이제는 주변 사물이나 문화 속에 담긴 함축적인 상징을 찾아내는 여유를 가져도 되지 않을까.

책 속에 등장하는 여러 사물 중에서 나의 관심을 가장 끈 것은 ‘호미’였다. 호미는 너무 익숙한 농기구라서 어느 나라에나 있는 것인 줄 알았는데 우리나라에만 있는 전통 농기구라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정원 가꾸는 것을 즐기는 서양 사람들이 호미를 사용해 보고 그 편리함에 극찬했다는 내용이나, 작년에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오스트리아를 국빈 방문했을 때 빈 대학 식물원에 호미를 선물한 이유를 이제야 알 듯하다. 우리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고 더욱 사랑해야 할 문화였던 것이다.  

그런데 호미에 대한 나의 어쭙잖은 생각을 훨씬 뛰어넘는 선생의 상상력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칼이 안에서 밖으로 내밀면서 사용한다면, 호미는 거꾸로 밖에서 안으로 잡아당긴다. 그래서 호미질은 너무 세게 하면 자신의 발등을 찍게 된다. 또한 풀을 베는 낫처럼 파괴적인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흙을 돋우는 살리는 일도 한다. 뽑는 작업이든, 돋우는 작업이든 호미는 뿌리의 근원을 향해 존재한다. 호미의 힘은 안으로, 뿌리로, 자기 자신으로 끝없이 응집해 들어오는 힘이다. 호미의 아름다움은 밖으로 내밀어도 그 ‘경고의 칼날’이 언제나 ‘자신’을 향해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겐 익숙한 것들이라서 쓸모만 생각하고 그 속에 담긴 의미나 아름다움은 미처 알아채지 못한 듯하다. 일상과 함께해온 물건 하나하나에는 그것을 사용한 사람들의 마음이 담겨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실용적인 면만 들여다봐서는 본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아쉽게도 우리는 많은 것들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올봄에는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학교 옥상 정원을 몇몇 선생님들과 가꿔보기로 했다. 호미를 가까이하며 호미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느껴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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